대륙의 객잔 (번외편) ep7
불편했지만 그곳에서 얻은 것들
상하이의 어느 노을지는 저녁
회귀의 본능, 나는 자유롭고 싶다
상하이에서의 일년은 일정하고 단조롭던 내 사회생활의 주기를 깨고 주체적인 행동을 하게 된 첫번째 경험으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은 결정이였고, 지금도 그 때의 결정을 하고 그 시간들을 잘 지내 온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문구이다. 상하이로 떠나게 된 것은, 견고하게 다져나갔던 내 세계를 박차고 나간 경험이였는데, 새로운 경험앞에 설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였다.
어학당 같은 반의 나이어린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무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상하이에서 과연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에 짓눌려버리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떠났던 것 치고는, 많은 좋은 친구들도 만났고 (물론 가끔 혼자라는 외로움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날 들도 있었지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곳도 많이 돌아다니고, 전반적으로는 내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시간들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한국으로 돌아갈 날들이 점점 다가오면서, 과연 내가 중국에서 평생 살아야한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게 했던, 상하이에 살면서는 꼭 경험해야하는 불편한 것들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자 한다. 상하이를 사랑하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고, 상하이에서 지낸 일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지만, 어쩔땐 목을 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라서, 느낀 불편함에 대해서 말이다.
지하철을 타기위한 관문
지하철을 타는데, 꼭 짐검사를 해야하나?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체제는 공산주의 국가로, 중국의 공산주의 시스템안에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거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지하철을 탈 때, 꼭 짐검사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이다.
지하철 개찰구를 들어가기 전에, 짐을 항상 엑스레이 검사대에 통과시켜서 나의 소지품중에서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이 판명이 되어야 비로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사실 상하이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엄격한 검사를 거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상하이에 지내면서 항주, 소주와 같은 근교도시를 여행할 때, 그곳에서도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있었는데, 가방속에 물통이 발견되면 꼭 그 물을 한모금 마셔보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물이 그냥 '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상하이는 그 정도의 엄격함없이 지하철 짐검사를 할 수 있어서, 다른 도시보다는 조금은 수월한 편이긴 하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상하이와 같은 도시에서 지하철 짐검사를 할 때, 모든 사람에게 물 한 모금씩 마셔보라고 한다면, 아마 매일매일이 대란일 것이다.
사실 지하철뿐만 아니라, 기차 등을 이용할 때도 반드시 모든 짐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하철, 기차 등의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이용하는 공공 교통수단 역시도,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만 했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하니, 불편함을 넘어서, 왜 내가 잠재적 범죄자로 이 사회에서 취급을 받아야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중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매번 짐검사를 받아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고. 하지만 그들의 답은 중국정부에서 하는 공익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는 답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만에 하나라도 있으면, 인구가 많기로 손에 꼽히는 중국인들에게 피해가 엄청나게 클꺼라고. 사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말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피해는 정말 끔찍할 것이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때문에 그런 검사시스템을 유지, 실행하기보다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공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에 더 집중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자쪽의 시스템으로 사회유지를 하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공을 들이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에 틀림이 없는,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긴 하다.
하지만 내 생각이 어떠하든, 중국에서 살기위해서는 꼭 경험해야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중국의 버스터미널, 짐검사를 통과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은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틈만나면 아무 의식없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시시각각 확인하는 내 모습이 웃길 때가 있다. 자기전에도 혹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내 바로 옆 핸드폰에 손을 뻗어, 정말 무의식의 행동으로 SNS를 확인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된 행동을 자제하고 고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강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할때는 사실 힘이 들긴 하더라. 바로 중국에 살면서 불편하고 힘들었던 얘기다.
한국에 살면 우리 생활과 정말 밀접한 구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거대한 해외기업의 플랫폼부터 한국의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까지, 중국에 살면 사용할 수가 없다. 중국바깥의 세계와 접속하는 일은 중국에 살면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VPN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중국에서 사용 금지된 사이트들을 접속할 수 있지만, 속도가 매우 느리다보니 왠만한 인내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안될 때가 있다.
한번 인스타그램이나 혹은 네이버 등을 한번 사용하려고 하면, VPN에 접속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힘들게 접속이 되더라도 그 속도는 얼마나 느린지. LTE 대한민국에서 사는게 늘 일상인데, 그것의 속도가 지릿지릿하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말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정말 나는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 이유가 내가 작년에 중국어 공부에 더 매진한 이유가 되었었나? 그리고 이번 중국여행에 틈틈히 글을 써서, 브런치에 꾸준히 올릴 예정인데, 매끄럽게 잘 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긴 하다.
세상과 쉽게 소통되지 않는 점은 중국에서 살면서 분명 불편한 점 중에 하나였고, 그 생활을 일년정도 하다보니 세상과 소통하려는 나의 욕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살아났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중국에서 살아보면 어떨지?라고 묻는다면, 사실 '글쎄'라고 답할 것 같다. 상하이는 정말 세상 어느 도시보다 역동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곳이다보니 많은 인적인프라는 절대적인 필수요소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여서 그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한번쯤 경험해볼만한 장소이지만, 세상과 쉽게 소통할 수 없는 점은 이 곳에서 감수해야하는 불편함이다.
내적 성장 체험기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문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무 고민없이 대학을 진학한다. 대학을 진학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하게 내가 가야할 곳이였고 4년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곳이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직을 하고 돈을 모아서 얼른 집을 사야하고.. 내 인생과 내 미래는 나의 진지한 고민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뭔가 가슴속 깊은 곳에 활활 타오르는 그 무엇을 가진 사람인 것 같은데, 과연 활활 타오르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으니, 그래도 남들보다는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에 임했던 것 같고, 더 활동적으로 주말이면 이것 저것 배우러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활들은 내가 진정 원했던 것들은 아니였던 것 같다. 회사생활을 열정적으로 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이것 저것 배우러 다녀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시도해보았으나 내 마음속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그것이 과연 무언인지 모르겠으나, 이대로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고, 내 마음속 공허함이 무엇때문에 계속 느껴지는지, 나는 어떠한 것을 원하는 사람인지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떠났었다. 일년의 중국생활이, 그러한 나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해준 것은 아니였지만, 그 답을 찾기위한 과정을 몸으로 살아본 것은 나의 인생에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내 나이는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항상 걸림돌로 작용을 했다. 이건 전적으로 내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나의 심리적 걸림돌이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나이가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나이별로 할당된 사회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나이때는 무엇을 해야하고, 또 이 나이때는 무엇을 완성해야 한다는 식 말이다. 물론 사회는 많이 변화되었고, 내 나이의 사회적 역할을 고정된 관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하지만, 고정관념을 탈피해서 살아가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다양한 나이대로 구성된 황산을 함께한 친구들
하지만 중국 상하이에서의 일년은, 한국에서 느낀 나의 제한적 역할을 탈피하게 해준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이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상관없이, 서로의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하다면 금방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내가 평가하는 '나'는 어느새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에 인간관계는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는데, 그 중요한 요소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충족이 되다보니, 생활의 만족도도 높아졌고, 지금 역시 혼자 중국 도시 여행을 앞두고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나는 어딜가서도 잘해낼 것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선척적으로 혹은 자라난 환경에 의해서 높게 형성된 사람도 당연하게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알을 깨고' 나가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한번 해보니'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이상은 힘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중국친구의 초대로 경험할 수 있었던 중국 가정식 식사
해보지 않은 일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또 다른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 아직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나이이고, 그래서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어디를 가든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긍정적인 경험을 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상하이에서 일년을 보내면서 얻은 것들이다. 돈을 주고도 얻지 못할 내적자산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내 인생이 슬슬 재미있어지려고 한다. 다시 한번 퇴직자가 된 것은 앞으로가 결코 녹록치않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스스로 일군 내적자산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동력으로 작용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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