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접수 창구 안내판에 256번이 뜬다.
A가 갖고 있는 접수증의 번호도 256번이다.
"띵동-. 256번 안계세요?" 하는 안내 AI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A는 자신의 접수증 번호를 확인하고 일어선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는데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다 보면 새로운 일에 크게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된다- 막상 이 건물에 오니 간만에 A 자신이 집 외부에서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해버렸나보다. 물론 그 외에도 인지능력이 젊었을 때보다 많이 떨어져서 신속하게 반응을 못하는 것도 있을 터이다.
"오늘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이미 키오스크로 신청서까지 접수를 했지만 요식 행위로 확인차 접수원이 물어본다. 매뉴얼화 돼 있는 모양이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는데 개인정보 보호법이 2011년에 처음 제정된 후 지금 엄청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개인정보 보호에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차라리 로봇이 안내까지 노동을 대체해버렸다면 이런일이 좀 줄었을까? 이래나 저래나 철밥통이 확실히 좋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아... 존엄사 신청하러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홍채 인증 해주세요."
안내원이 홍채인식기를 눈 앞에 갖다 댄다. 과학이 이토록 발달했는데도 관공서에서는 아직도 홍채인식기 같은 방식으로 신분확인을 하다니 뇌파 본인 적합 판정은 보안과 예산 문제때문에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서 할 수 없다나 뭐라나. 너무 보수적인 집단이 아닌가 A씨는 답답함을 느꼈다.
20XX년 항국
인구 절벽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국민연금 고갈로 거리 곳곳에 시위가 일어나고 범죄율 증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10~20대 자살율 증가로 인한 인구 노령화의 가속 등 문제가 불거지자 여러가지 시행착오 끝에 항국은 국가 복지 사업으로 존엄사 지원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지금은 최초 사업 시작으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시점이다. 처음 법안이 발효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상용화 될거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겠지.
"떼잉~~ 쯧쯧... 나라에 망조가 들었구나. 어디 나를 죽이려고!!"
A의 할아버지인 정하준이 처음 뉴스로 존엄사 국가 지원 사업을 봤을 때 했던 반응이었다.
"존엄사는 얼어죽을 개뿔. 안락사도 아니고 뭔. 자살 시키는거지!!"
할아버지 정하준의 집에서 같이 뉴스를 보던 A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곧 사람들의 욕을 먹고 법이 제정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덥잖은 일이겠다하고 한귀로 듣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5년 후 할아버지가 지원사업으로 존엄사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아니 아버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정하준의 아들이자 A의 아버지인 정로이가 놀란듯이 바로 맞받아쳤다.
"무슨 소리긴? 애비 국존사(국가 존엄사 사업 줄임) 모르느냐?"
"모른다는게 아니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절대 안 하실거라고 그렇게 화까지 내셨으면서 왜 갑자기 그러시는건데요?"
하는 정로이의 표정은 놀람에서 안도감으로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었다. 나이먹을 대로 먹은 정하준이 눈치 못챌 것도 없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채 하며,
"그 왜, 옆집에 시우 할아범 알지? 얼마전부터 국존사 전도사가 돼서 이것저것 자료를 보여주더라고. 보다보니 할만 한거 같아. 여러가지 혜택도 많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 이제 충분히 살았다. 관절이 너무 아파"
나 이제 충분히 살았다. 천청벽력 같은 말이다.
20XX년에 1차 존엄사 합법화, 그리고 2차 존엄사 비용 지원으로 추진된 이 사업의 추진배경을 다음과 같다.
계속된 부동산 정책 실패. 빈익빈 부익부. 노동을 해야하는 젊은층의 집단 우울증으로 인한 멘탈 케어링 복지 예산 증가 및 10~30대 자살률 증가(최대 50%까지 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로 인한 세수 감소. 젊은층 거의 말살로 인한 출산율 감소.
안 그래도 출산율이 낮았던 전세계적 기류에 기름을 뿌린 격이랄까. 부동산 정책이 잠시 성공했던 시기에도 결혼율과 출산율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집값때문에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하지 않는 노년층을 지속해서 늘어가고 젊은층은 지속해서 죽어간다. 국민연금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고 실 수령액은 라면만 먹고 살아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극히 적었다. 이로 인해 죽는 사람이 많아서 고독사나 자살 시체 전담 부처가 생겼을 정도였다. 차라리 눈앞에서 깔끔하게 죽으면 좋으련만. 정부는 이 흐름을 바꾸고 싶었으리라.
그로 인해 나온 지원사업은 다음과 같았다.
<<국가 존엄사 지원 사업>>
1. 대상 : 만 20세 이상의 성인
2. 지원범위
가. 20세이상~30세미만(부양가족 없는 1인가구 기초수급자) : 존엄사 비용의 50%
나. 30세이상~40세미만(부양가족 없는 차상위 계층 이하) : 존엄사 비용의 최대 10%
다. 40세이상~60세미만 : 존엄사 비용의 최대 30%(소득분위에 따라 차등)
라. 60세이상 : 존엄사 비용 최대 100%(단, 만 70세 이상 100%지원)
3. 신청기간 : 연중 상시
4. 접 수 처 : 국가 존엄사 지원 사업본부(위치 : 서물특별시 ㅇㅇ동~)
5. 기타 블라블라 블라~~~
이 외에도 존엄사 관련 굿즈도 나눠주고 관련 영화도 만들고 공무원들을 갈아 필살의 홍보를 해댔으니 어르신들은 가스라이팅 당했을만도 하다.
60살이었던 국민연금 수령시기가 65살로 늘어난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70살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외모야 예전보다 다들 어려보이지만 신체나이를 줄이는 시술은 아직도 상용화되지 않았는데(삼송그룹 회장님이 텔로미어 관련 유전자 변경 시술을 받았다는 증권가 찌라시는 있다) 70살까지 일을 하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젊은층이 처음부터 좌절하고 자살할만도 하다. 70살까지는 일해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공뭔들이 심드렁하게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도 당연한 처사다. 연금 받기 전에 죽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직장인 중에 자살률 가장 높은 것이 공무원이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일하지 않고 국가 예산만 빨아먹을 60세 이상은 그냥 죽으라는 말이다. 특히 저 지원범위의 70세 이상의 어르신들 100% 지원은 그냥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수준이다.
10대 이하는 그냥 죽지말고 일해야하고 20대이상은 일해야 하지만 차라리 범죄일으키거나 너무 힘든 상황에 고독사해서 예산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존엄사해서 나라에 피해를 주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와중에 100% 지원은 아니라는 점이 표독스럽기 그지없다.
"나 때는 말이야~ 아 내가 이말 하는건 싫어하지만 어쨌든, 존엄사(이제 비꼬시지 않는다)를 하려면 존엄사가 합법인 나라에 가서 거금을 주고 했어야 해서 그 나라 가는 항공권 비용, 체류비용, 그리고 죽기 전에 그 나라에서 잠깐 즐길 여행비용까지 합쳐서 못해도 그 때 당시 4천만원 정도는 있어야 했어."
잠깐 그 때 당시 4천만원이 지금 물가로 치면 얼마일까 하고 쓸데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뭐 어쨌든 지금으로 치면 사회초년 직장인 연봉 정도는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 죽기 직전이라도 먼 만리타국에 간 김에 여행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들이 왜 존엄사를 선택했던 걸까? A는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부분에서 정하준은 굉장히 격앙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합법화가 되었고, 이제는 캡슐형 약으로 간편하고 저렴하게 집에서도 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가성비가 좋지 않느냐!"
죽음을 '간편','가성비'로 표현하고 의사가 입회하지 않은 센터에서 하지 않는 집에서 존엄사는 아직은 불법이었고, 이래저래 할아버지의 단어 하나하나가 지적하고 싶은 것 투성이었지만 A는 참고 경청해보았다.
"약 값은 지원금 받으면 커피값 정도밖에 안 되고, 그 밖의 간이장례비, 영상서비스, 화장 등을 내 나이에선 최대 100퍼센트 지원해준다잖냐, 제수도 3박4일 여행도 지금 신청하면 선착순으로 갈 수 있다고 하네."
안심한 표정의 정로이를 굳이 설득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정하준은 어린아이 달래듯이 갑작스러 목소리를 내리깔며 비용적 측면을 제시했다.
"아 그리고, 옆집 시우할아범이랑 동반 입소하기로 했어. 제수도 여행가서 귤도 좀 보내주마." 하고 찡긋 윙크까지 보이는 유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듬해 1월, 보내주신 제주도 귤 1박스를 채 다 먹기도 전에 우리곁을 떠나게 됐다.
흰 벽으로 돼 있는 작은 상담실 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 나오고 있다. 확실히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성 상담사가 A가 작성한 신청서 파일을 훑어보며 말한다.
"네 A님. 신청서는 잘 봤어요. 지금 신청이 밀려있어서 신청하신 존엄사 기간에 시술 불가하실 수도 있다는 점 고지드리구요. 어머, 국가유공자시네요! 70대 이후 존엄사 신청한 분이 가족중에 3명이나 있으세요? 원래 A님은 지원범위 최대 30%인데 국가유공자분들은 70%까지 지원해 드리고 있어요"
"사실 죽고싶지 않아."
실낱같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할아버지가 말한것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5평 남짓의 존엄사실에 모인 가족들(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A) 다들 안들린척 입 모양을 못 읽은척 했지만 알고 있었다. 알약 한방이니 산소마스크도 끼지 않았으니 상당히 크게 들렸다.
우리 할아버지 정하준은 아직 살고싶었다. 아들 내외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리기 싫어서 센척을 했을 뿐. 따로 개인연금을 들어놨어야 했지만 전세사기를 당한 후 할아버지는 내일 없이 살았다고 한다. 당직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아둥바둥 아끼고 저축해봐야 무슨 소용이냐 이것이다.
"20XX년 1월 20일, 정하준님 사망하셨습니다."
사망선고를 하는 저 의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가. 분명히 들었을텐데. 아니면 격무로 시달리고 있어서 하루에도 몇번씩 보는 존엄사에 이제는 별 감흥도 못 느끼는 것인가. 물질적 서비스을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사실 정서적 서비스까지 바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A의 부친 정로이는 시름시름 앓아갔다. 평생 강해보이고 호통만 치던, 그리고 늘 유머를 잊지 않고 유쾌하던 아버지의 약간 모습을 보고, 그리고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이 되니 적잖이 충격이 컸었나 보다. 옆호실의 시우할아버지의 가족(딸 1명, 로즈 아주머니)과 나와서 마주쳤으나 잘가란 인사 한 마디 못할 지경이었으니.
"아하하... 제가 국가유공자라구요."
어느새부터 가족 윗대 3명이 연금을 받지 않은채로 죽었다고 국가유공자로 지정이 되었을까. 아이를 낳으면 국가유공자라고 농담삼아 하던 것이 이젠 나이들어 빨리 죽으면 진짜 국가유공자가 되는 사태까지 왔다.
"그럼요. 노년층이 줄어들어서 환경문제도 많이 개선되고 있잖아요. 미래세대와 지구를 위해 이바지 해준 가족분들이신거잖아요."
아까 접수처의 직원보단 상담사는 확실히 용역업체라서 그런지 사근사근 친절한 말투였다.
이런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지정이 된다면 부자가 아닌 집들은 대부분 국가유공자 지정이 돼 있을 것이다. 국존사가 실질적으로 거의 현대판 고려장이 돼 가고 있었기 때문.
국존사는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환경문제, 예산문제, 집값, 그리고 인구절벽 등이 시행 이후로 점차적으로 나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환경과 집값부터 말하자면 몇십년 전 결국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버렸다. 그렇게 물에 잠기기 전에 올디브에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했었는데, 결국 올디브도 잠겼다.
전세계적인 문제였다(올디브가 잠기기 전에 적극 러시로 돈을 벌어드려 주민들은 모두 분산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민 타국으로 이민하였기에 인명사고는 없었다).
올디브가 잠겼는데 다른나라라고 안전했을쏘냐. 항국은 해수면에 인접한 도시들이 다 물에 잠겼다. 해문대 앞의 그 비싼 아파트들도 다 잠겼고, 억소리 나는 피해금액에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하라고 부신 시민들과 그리고 부신에 아파트를 산 듕귁의 국민들이 앞장서서 시위에 나섰다.
이미 예고된 천재지변인데 몇십년전부터 경고를 했건만 끝까지 안 잠길거라고 희망회로 돌린 것이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인첨도 대부분이 잠겼고, 여슈 밤바다..? 이런것은 흔적도 찾을 수 없게됐다. 이제 여슈는 해저도시로 우뚝 서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점차 성공하던 부동산 대책이 또 하릴없이 꼬꾸라지고 말았다. 항국 중심부지역 및 고지대를 중심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아무리 집값이 싸다 한들 몇년 뒤면 물에 잠겨 쓰러질지도 모르는 바다에 접한 아파트에 목숨을 담보로 살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국존사 시행 후 인구수가 감소하며 석탄사용량, 산림채벌양, 폐기물 발생량이 줄어들며 환경문제가 개선되었다. 옛날에는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서 마스크를 쓰고 다닌 때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막지역이 아니면 미세먼지를 민간인이 느낄 새도 없다.
인첨에 있던 1차 수도권 매립지 이후 국민들의 강한 반발에 만들어진 2차 걍남의 서물 매립지 및 각 지자체별로 자체적으로 만든 지자체 매립지에 매립된 양이 이제 자연분해를 걸쳐 다시 그 매립지에 묻는 리사이클링 가능해해졌다. 비닐은 아직 썩지 못했겠지만. 대기가 좋아지면서 호흡기 질환도 줄었다.
그리고 인구수가 감소하면서 집값도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저 걍남의 서물 매립지를 만든시점부터 집값이 잘 잡혔다. 일단 인구수가 감소하니까 전월세 임차인이 줄어들면서 부자들이 부동산 투기 대신 금모으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층 우울증 발생량과 자살률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단 인간은 의식주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의식주가 모두 보장을 받는 첫번째 세대가 된 것이다. 또한 불안정한 세계정세에 대비해서 여럿의 자녀들 두기보다는 1명의 똑똑한 자녀를 두자는 기조가 마련되며 전세계인 학습성취도 및 지능이 높아지게 되었다.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으로 오늘날의 IQ100은 초기 웩슬러 지능검사의 IQ135 정도에 육박하게 되었다. 현인류가 불과 백몇십여년 전 인류보다 뇌가 발달된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인류를 과연 호모사피엔스로 한데 묶어놔도 괜찮은것인가? 분명 두개골 형태가 바뀌었을 것이다. 조속한 연구 및 개정이 필요하다. 뇌는 고생시킬수록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 똑똑한 머리로 과학자가 된 이과생, 공대생들이 지금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런데 대체 왜 대머리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다.
어쨌든 그 천재 과학자들이 석탄 대신 대체에너지(원자력 등)를 안전하고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서 전세계적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전세계 인구가 20억 정도인데 (예전엔 90억까지 갔었다) 이제 전세계는 하나의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기술교류는 당연한 셈이었다. 위에 따로 언급은 안 했지만 항국은 존엄사를 합법화 한 oecd의 마지막 국가였다. 다른나라들은 이미 존엄사를 하여 노령인구를 줄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