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부의 사랑법
우리는 19년 차 평범한 중년의 부부다. 맙소사! 우리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좋아서 감탄이 나온다.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 후로 아빠는 아내를 두 번을 더 바꾸셨고,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과 혼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일 고난이었다. 엄마는 딸 셋을 데리고 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고,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결국 엄마는 아빠로부터 우리를 쟁취했다. 우리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을지 그때는 다 알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완벽한 모녀가정이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했다.
갓 스무 살 때,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가정을 이루게 될까?’ 화목한 분위기의 친구 집에서 어렴풋하게 ‘가정에 대한 롤모델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누리지 못한, 평범한 가정생활에 대한 결핍은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승화되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 가난하지 않은 가정’을 토대로 치열하게 노력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혼 초에는 부부가 부딪힐 일이 많다. ‘내가 저 인간이랑 계속 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저 사람을 사랑했나? 왜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 거지?’ 의문투성, 불만투성이었던 때조차도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사랑을 놓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더 모아보자고 아득바득 아끼며 저축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정의 결핍은, 훗날 내가 두댕과 함께 만든 가정을 더 치열하게 지키게 만드는 힘이었다.
나만 애쓴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성격이 매우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며,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불같이 화를 내고, 세상 서럽다는 듯이 울기도 잘 운다. 우리 부부의 싸움은 나의 원맨쇼라고 봐도 무방하다. 남편 두댕은 세상 침착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감 능력이 매우 낮다. 본인 스스로가 스트레스에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싸우기를 천성적으로 싫어하고,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혼생활부터 ~ 회사생활까지 논쟁 및 분쟁은 내가 나서서 처리해야 했다. 물론 나도 나서고 싶지 않지만, 나까지 나서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정반대 되는 성격이 아주 불편하지만은 않다. 성격이 급한 나는 추진력이 좋은 대신 꾸준히 해내는 끈기가 없다. 반면 두댕은 추진력이 없을 뿐 주어진 일은 끝까지 인내심 있게 해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완했고 이제는 서로에게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아무래도 표현에 적극적인 내가 공격형, 표현이 많지 않은 두댕이 방어형이 되었는데 그게 이제 와 탈이 난 것일까?
두댕은 올해로 한국 나이 51살이다. 없는 집에 태어나 어머니의 희생으로 무난하게 선한 사람으로 잘 자랐다. 그 시절 없는 집이 보통 다 그랬듯이 위로 형, 누나들은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막둥이였던 두댕은 할머니와 꽤 오랫동안 지내왔던 것 같다. 허리가 다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아버지는 죄책감과 열등감에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셨고 가계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밤낮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다니셨다고 한다. 두댕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다. 두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할 얘기도 안 하고, 안 할 얘기도 안 한다. 그래도 직접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릴 적 새 신발을 신고 나가 흙이며 뭐며 진탕 묻혀 와 어머니에게 엄청 혼이 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포인트는 ‘엄마가 밤 12시가 다 되어서 퇴근해 집에 오셨는데 내 신발을 보고 나를 막 혼내셨다. 그 밤에 엄마는 신발을 갖고 냇가로 가 신발을 빨아 오셨다’는 부분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도 우리 두댕은 마음으로 울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죄송해서. 그리고 그 시절의 엄마가 안쓰러워서, 측은해서, 너무도 가여워서.
두댕이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는데, 바로 어머니가 받으신 효부상이다. 눈이 먼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국가에서 효부상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희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스스로 가장 노릇을 못 한다고 자책하면서도 어머니를 구속하셨다고 했다. 아버지 때문에 머리 한 번을 못 길러봤다고, 색이 화려한 옷은 입지도 못하게 했고, 치마도 못 입었다고 종종 푸념하기도 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어머니는 머리를 기르지 않으셨고 치마도 입지 않으셨다. 그 대신 화려한 색의 옷은 매우 좋아하셨다. 그 옛날 어머니는 참고 또 참으셨을 거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셨을 거다.
그래서 두댕도 잘 참는다. 화가 날 법도 한데 어지간해서는 화내는 걸 못 봤다. 아무래도 집안 내력인 것 같다. 시댁 가풍 같기도 하다. 참고 또 참다가 병을 얻는다. 큰 누님도 우울증이 있었고, 둘째 누님은 공황장애로 긴 시간(15년 정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다행히도 지금은 큰 누님도 둘째 누님도 건강해지셨다.
그런데 두댕은 안 건강하다. 건강에 염려가 생긴 지 5년 정도 된 것 같다. 두댕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머리가 복잡해지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잡생각이 들면 유튜브를 본다. 생각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통해 잊어버린다. 결혼 후 쭉 이어온 생각 습관이다. 그런데 이제 와 탈이 단단히 났다.
2020년 건강검진을 받고 폐에 염증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일하던 중 잘못 들이마신 가스로 인한 염증이었다. 삼성서울병원까지 다니며 잘 치료받았고, 완쾌됐는지 꼬박 3년을 체크했다. 그러는 중 두댕에게 두통이 찾아왔다. 안타깝게도 두통은 객관적 수치로 진단할 수 없는 병이다. 본인이 어떻게 느끼는지 얼마나 통증이 있는지 환자 본인의 입에서 표현되는 주관적인 의견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스트레스성인 긴장형 두통은 특히 그렇다. 두통이 찾아온 것이 폐에 염증이 생긴 직후였던 것은 우연일까?
한두 해 정도 두댕은 계속 무기력했다.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회사 일도 간신히 근근이 해나갔다.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할라치면 ‘머리가 아파서 그렇다’, ‘컨디션이 안 좋다’, ‘나중에 얘기하자’ 등등 회피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두댕은 자신만의 동굴로 점점 더 깊이, 더 자주, 더 길게 숨어있었다.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에 있는 것이 함정이다. 두댕은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사무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23년 3월 가게를 새로 오픈하면서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두댕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병원에 함께 가달라고 애원했다. 얼마나 애절하게 얘기하던지 처음 보는 두댕의 모습에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지난달 저주파 난청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인한 피로감과 불안감이 전신에 힘이 빠지는 증상으로 온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이비인후과 중 가장 유명하기로 소문난 병원으로 갔다. 원장님께서는 꼼꼼히 보시더니 치료는 잘 되었다고,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확인해 주셨다. 그 후 두댕은 서서히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계속되는 무기력감은 결국 또 두통이라는 질병을 끌어와 두댕 옆에 앉히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불안함에 두댕은 해마다 MRI를 찍었다.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건강하다는 소견을 주셨고 그럴 때마다 두댕은 더 불안해했다. ‘뇌가 문제가 없다면 그럼 어디가 문제인거지?’ 불안해서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말에 더 불안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댕은 동굴 속에서 유튜브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불안을 잊기 위해서 보는 것인지, 계속 보고 있어서 불안해지는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두통으로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뵙고 진단받기로는 두댕은 긴장형 두통이라고 했다. 스트레스성으로 스스로 관리하면서 다스려야 하는 두통이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두댕의 두통을 내가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아프다는 건지, 얼마나 아프다는 건지, 어떻게 하면 증상이 좀 나아지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야 했지만 두댕은 잘 표현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두통에 대한 책을 찾다가 우연히 ‘김약사의 편두통 일지’라는 에세이를 발견했다. 약사라는 직업이 무색할 만큼 만성두통으로 고통받는 환자이기도 한 저자는 두통의 형태, 강도, 지속시간 등으로 세분화하여 스스로 증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데이터로서 유의미한 것들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처치를 하며 두통의 증상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저자의 외로움, 불안감, 우울감 등의 여러 감정이 나에게도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두댕도 ‘외롭고, 불안하고, 우울했겠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책에서 저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으로 계속 노력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책은 무엇보다 환자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환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두댕에게 들려주었다. 책을 읽지 않는 두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책을 읽고 주요 부분을 들려주는 일. 두댕은 듣고 있더니 본인의 마음도 그랬다면서, 저자의 말에 속이 다 시원하다면서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기뻐했다. 두통과 두댕 사이에 또는 나와 두댕 사이에 통역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두댕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에 적잖게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 후 함께 두통일기를 기록하며 두통을 관리하기 위해 애썼다. 두통에 좋다는 냉감 모자는 눈의 피로와 두통으로 인한 열감을 식히는데 효과가 있었고 두댕은 현재까지도 매일 애용하고 있다.
이제는 두댕이 몸도 마음도 회복되어 가는 방향으로 글을 써 내려가야 자연스러울 테지만, 그렇지 않아 유감입니다. 두댕은 여전히 아프다. 이번에는 고주파 난청이 왔고(저번에는 저주파 난청이었다), 그로 인해 안정되어 가던 두통 증상도 불안정해졌으며 무엇보다 불면증을 가장 힘들어한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불안 증상이 정상 수치보다 조금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증상을 잠재울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기만 했던 두댕은 가끔 화를 낸다. 몸에 체온이 갑자기 올랐다가 내려가기도 하고, 자고 나면 식은땀이 나 있다.
이상하다! 옛날에 우리 엄마 갱년기 증상이랑 너무 비슷한데?
두댕은 지금 갱년기가 아닐까? 폐에 염증이 생겨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래로 5년 동안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러면서 두통, 난청, 이명 등 전에 없던 증상과 질병으로 몸도 마음도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51세 남성의 건강 조건에서 평균 이상으로 건강한 신체 기관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두댕은 본인이 잃어버렸거나, 기능이 저하된 신체 기관에 대해서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이비인후과 원장님께서도 두댕의 불안이 많이 느껴지셨는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심리 정서 안정을 돕기 위해 애를 써주셨다.
놀라지 마시길, 두댕은 평생 술과 담배를 안 했다. 심지어 총각 때부터 헬스를 꾸준히 해온 덕에 몸도 좋았으며 결혼 초 서로 고생하고 사느라 살이 많이 빠지긴 했었지만 지금은 체중도 상당히 복구된 상태다. 총각 때보다 몸이 더 났다고 만족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두댕은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식사는 물론 자극적인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고, 기름기 있는 음식도 즐겨하지 않는다.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정기건강검진으로 신체 건강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두댕은 서운해 죽는다. 요즘 내가 하는 말의 50% 이상은 서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티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잔소리도 안 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만 생각보다 잘 안된다. 잔소리도 습관인가 보다. 나부터 습관을 바꿔야겠다. 두댕이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라면 살짝이 빨래를 권해본다. 은근슬쩍 집안일 이것저것을 권해보는데 안 한다고는 못하고 성의는 보여주는 편이다. 마땅히 취미가 없는 두댕이 점진적으로 살림에 재미를 붙여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성이 조금씩 되살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완벽한 시나리오다(살림하는 두댕이라, 생각만 해도 좋아죽겠다)!
공격형인 나는 이제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두댕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통이 있으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갱년기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두댕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기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많을 때도, 속이 복잡할 때도, 늘 “괜찮아” 한마디로 끝내는 그 짧은 말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잘려 나갔을까. 나는 그 잘린 문장들을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이어 붙인다. 깊은 대화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잘 살아왔다. 그렇대도 가끔은 답답하고, 화가 나고, 외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들까지 두댕에게 건네면 그는 그것마저 짊어지고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알기에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두댕 스스로의 속도로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깊이 생각해 보고, 표현해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불안에 대해 직면하고 그 불안을 스스로 거두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두댕의 두 번째 사춘기가 언제 끝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긴 여정이 되지 않기를, 하지만 언제나 두댕 옆에는 효댕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 여정이 끝나는 때에 두댕 자신의 언어로 자신에 대해 말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중년의 부부는 사랑으로만 살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연민과 위로, 존경과 감사, 이해와 용서. 함께 견뎌온 시간에서 사랑보다 더 큰 감정들을 키워내고 그것으로 더 단단하게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