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그저 나만의 나를

Jane Eyre(2011)

by 감자부침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내 주인공인 제인은 수많은 선택들을 한다. 그녀의 선택들은 영미문학을 원작으로 둔 영화가 흔히 그려내는 전근대 여성서사의 캐릭터성을 상당 부분 탈피하고 있다. 크게 세 장소로 나누어 분석해 보자.



Ⅰ. 외삼촌 댁과 로우드 자선학교

고아인 그녀는 외삼촌 댁에서 자란다. 불행히도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난 뒤, 외숙모와 사촌의 구박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축되기보다는, 자신에게 못되게 구는 가족들에게 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을 보여준다. 외숙모는 그녀를 고아들을 위한 로우드 자선학교로 보내고, 이는 혈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고 싶은 제인의 욕망이 커지는 촉매제가 된다. 학교에서는 교육을 빙자한 폭력을 당하며 살지만 스스로의 총명함과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제인은 버텨나간다. 그녀는 왜 학교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다른 아이들이 굴복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흔히 반골(反骨) 기질이라고 하는 저항의 식이 항상 그녀에게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욕구가 강한 사람으로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조응하는 여성상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 인물은 더욱 빛난다.


Ⅱ. 손필드 로체스터가

로체스터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 그녀는 드디어 로우드를 벗어난다. 로체스터는 제인을 처음 본 순간 그녀가 그의 삶에 맑은 희망이 되어주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일련의 일들을 함께 겪은 뒤, 제인에게 ‘그녀를 얻기 위해 세습적 장벽을 뛰어넘어도 될까?’라고 우회적으로 청혼을 하는데, 제인은 그에게 이미 정혼자가 있다고 오해를 했기에 그와 그녀가 서로 동등함을 주장하며 화를 낸다. 이 부분에서 사랑을 대하는 제인의 주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로체스터의 옆에 있고 싶지 않다고, 자신도 당신 못지않은 영혼과 감정이 있다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여성의 희생이 전제된 '해피엔딩의 정치학'이 작동되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결혼을 약속하지만 로체스터가 평생을 져야 하는 십자가의 존재(아내)를 알게 된 뒤 제인 에어는 그를 떠나기로 선택한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과오를 묻고 사랑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변치 않았으니 영혼이 시키는 대로 선택하기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남자의 이성, 여자의 감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이데올로기를 부수고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음을 묘사한다.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던 로체스터의 잘못을 감싸주는 것이 아닌,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제인의 선택은 주체적인 여성의 초상을 보여준다.


Ⅲ. 리버스가

도망치듯 로체스터가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정처 없이 걷다 리버스가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제인의 내적 갈등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본능적인 감정보다 자신을 보호하는 선택을 한 인간이 느끼는 혼란은 그녀가 겪는 환각과 환청으로 나타난다. 한 인간으로서, 강인한 생명력만을 보여주었던 그동안의 주인공이 인간적으로 흔들리고 결국 무너져 버렸던 사랑에게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캐릭터의 다원화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로체스터에게 돌아가는 선택 또한 그녀 자신의 행복과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서임을 고려하면, 독립적인 여성의 로맨스 서사에 걸맞은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영국은 여성 인권이 낮았다. 당대 여성들, 그리고 그녀와 같이 고아인 사회적 약자들이 겪었던 삶의 풍파는 치열했고 그것이 주인공인 제인의 서사에도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탈관습적인 행동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작품은 시대의 답답한 한계를 극복한다. 그녀가 하는 선택들이 삶의 발자취가 되어 결국 행복이라는 도착점에 이르는 여정을 보면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지 않냐는 물음에 그것이 옳은 일이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휘둘리지 않는다는 제인의 대답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엇인지 감상자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세~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속 여성은 매우 한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보통 한 인격체로 인정받기보다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여동생, 누군가의 부인, 그리고 어머니로 존재한다. 사교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가문에 도움이 되는 혼맥을 맺는 것이 젊은 날의 과제이고, 그 후에는 남편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을 낳기 위해 애를 쓴다. 운이 좋으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고, 운이 나쁘면 그 마저도 없다. 그러나 2025년, 비혼과 만혼이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 역시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인에게 기대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당당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 시대의 여성들은 어땠을까. 또, 남성들은 어땠을까. 정상성은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있어왔고, 그들 역시 학습된 인생을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인에어는 기꺼이 이단아가 되었고, 취약해짐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했다.



많은 여성 원톱 서사물을 사랑해 왔다. 이 영화를 계기로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늘어나 기쁠 따름이다.









KakaoTalk_20251204_170723239.jpg 여성 중심 서사작품을 보거나 읽을 때면, 여성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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