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계획서 작성
분명히 저번주에 계영배처럼 비우는 한 주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부제목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대학원 입학 조건인 어학시험성적이 월요일에 공개되었다. 예상보다 높은 점수에 기뻤다. 약 한 달 전 브런치 글에서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던 시험이라 약간 부담이 된다고 털어놨었다. 나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벽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각성해서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아무튼, 쉽지 않았던 1월을 쏟아낸 결과가 좋아서 자신감이 좀 붙었다.
요건을 만족시켰으니, 연구계획서 작성을 더는 미루지 않고 시작했다. 사실 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었을 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뚜렷했다. 학부시절부터 가족정책, 저출생 정책을 비롯한 인구정책, 여성 정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계획서를 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겠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보다 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내가 학사 학위증이 있는 사람이 맞는 건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조언을 받고 있는 멘토님이 계시지만, 결국은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고, 나를 아는 건 나밖에 없기 때문에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그걸 알기에 더 머리가 아파왔다. 나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채워야 했다.(계영배야 미안)
내가 대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chatgpt가 학생들의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부터 그랬을 수도 있긴 한데 내가 자각한 건 그쯤부터다. 아무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AI에게 내 자아를 위탁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리면서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신기술이 들어오면 그걸 배척하는 사람과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 그보다 앞서서 현명하게 활용하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뉜다. 맨 후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흥선대원군처럼 무작정 배척만 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gemini와 협업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마치 브레인스토밍처럼,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연결고리를 찾아주면 나는 그걸 받아먹으면 된다. 연구계획서 초안을 쓰면서도 역시나 곁에 두고 나를 심화학습 시키도록 했다.
쓰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고민하는 것들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주제이고, 거기에 나만의 시각을 녹여내는 게 쉽지 않다. 성인이 되고부터 나를 수없이 갉아먹던 질문은, 내가 너무 무색무취한 사람인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개성이란 무엇이지. 남들은 갖지 못한 나만의 무기가 있기는 한 걸까. 난 뭘 잘하지. 결국 하나둘씩 포기하면서 획일화되는 것이 당연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휩싸여 제2의 사춘기를 보내던 스무 살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방황을 끝내고 나의 취미를 찾고, 익숙한 도전과 새로운 실패들을 마주하면서 지금의 내가 되고서 다시 비슷한 고민을 마주한 것이다.
내 중심을 찾는 데에 전력을 다했던 작년을 보내고 나니, 이번 고민은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나는 아직 어리고, 무경험자에, 배움도 짧다. 평생을 학교 안에서만 살아왔고, 또래집단에만 섞여있었다. 상처받고 상처를 주었지만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고유한 관점을 갖지 못한 건 당연할지도.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자고 마음먹었다. 연구계획서를 다 써놓고 그건 이미 어떤 교수님이 설명한 이론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제가 하면 하나라도 다른 게 나오겠죠'라는 뻔뻔함을 갖추자는 마음이다. 자꾸 밖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는데, 이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이야기가 있듯 나의 고유성은 그저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함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그러나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누군가 한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 조급이 느슨한 긴장으로 바뀐다. 장거리 마라토너처럼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