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무소속

이제야 책 제목값을 하게 됨

by 감자부침



이번 주 나의 졸업식이 있었다. <대책있는 백수>를 발간한 지도 어느덧 4달을 바라보고 있건만, 이제야 진성 백수가 되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매번 졸업 다음은 입학이었다. 한 번도 무소속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늘 어딘가에 속해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어디에있건, 몇 살이건, 무엇을 하건, 나는 우리 엄마아빠 딸이고 내 친구들의 웃긴 친구이지만 사회는 냉정하기에 자격을 갖춰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그리하여 무소속이다. 아직 어딘가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잠시 졸업이야기를 해보자. 재수와 휴학 없이 4년을 쉬지 않고 대학에 다녔다. 이른바 '칼졸'을 한 것이다. 취업시장이 안 좋은 요즘, 대학들은 수료, 졸업유예 등 예비 사회초년생들의 불안도를 낮춰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나 또한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선택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 나는 기꺼이 흔들리는 들꽃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력과 운으로 견고한 유리온실을 만들어왔고, 그 속에서 일평생을 지냈다. 그래서 한 번의 실패가 백 번의 성공보다 타격이 컸다. 어리기만 한 내가 보였고, 그런 나를 무소속으로 내던진 것이다.


다만, 대책 있는 백수가 되기로 다짐했다. 빈번했던 사춘기를 겪으면서 조금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새 출발을 위한 준비를 결심했다. 브런치북 발간이 그 첫 단추였다. 제목값을 하게 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지만 말이다. 첫 글을 발행할 때의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주 많이 다르다. 그 사이에 자존감을 회복하고 보다 충만해졌다. 몇 가지들을 시도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주식투자라는 새로운 길 위에 서보았고, 코스피 상승의 황금시기를 탄 덕을 보았다. 한숨 섞인 새벽과 별생각 없는 밤들이 지나갔다.


하루가 빤히 예상되고, 1년 후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측가능한 나이를 벗어났다. 그때에는 신변에 이상만 없다면 모든 것이 정상성의 궤도 안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졸업의 부제는 시작이다. 끝없는 자신감과 단단한 자아의 근원이 되어줄 학교의 졸업장을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야심 찬 발걸음이 실망으로 뒤덮일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설렐 수도 있을 나의 시작.









KakaoTalk_20260226_114844814.jpg Alis volat propriis(자신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from. <밤새들의 도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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