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 된 첫째 유정이는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 당연히 잘 외워질 리가 없다. 유정이는 처음하는 것에 쉽게 익숙해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처음하는 것을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아이일 뿐이다.
구구단은 결코 짧지 않다. 리듬과 운율에 맞춰서 이일은 이, 이이 사, 이삼 육... 구구 팔십일. 4단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처음이라서 그러려니 할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구구단 노래를 불러준다.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우리가 미국에 태어나지 못해서 미국말을 못할 뿐이다. 그러니까 무한 반복을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구구단도 그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어떤 원리라는 것이 있다. 구구단도 그렇다. 결국 같은 수의 합을 공식화 한 것이다. 매번 그 원리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설명해주는 것, 그 자체가 잔소리일 수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노래를 불러준다. 하도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8단까지는 왔다. 그리고 8 곱하기 4만 되면 늘 틀린다. 내 속은 터지지만, 실제로 그 답답함이 입 밖으로 나와서 야단을 치면 안 된다. 이건 야단을 쳐서 될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군대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이등병의 어리버리한 신병에게 고참들은 이름을 빨리 외우라고 다그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신기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것을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빨리 외우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 그건 혼내려고(갈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함) 그러는 것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처럼 구구단을 빨리 외우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알게 될 구구단이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 2학년의 구구단은 선행학습이다. 분명한 선행학습이다. 그러니 느긋해도 된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나는 유정이가 구구단을 잘 외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다. 내 자식이어서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유정이가 어떤 것을 배울 때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잠을 자야 한다는 점이었다. 유정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운 날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페달을 오른발 위에 맞춰서 힘차게 내리고, 왼쪽 페달이 올라오는 것에 맞춰서 왼발을 굴리면서 중심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당연히 잘 될 리는 없었다.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동시에 있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유정이는 아빠인 내가 설명해 준 자전거 타는 방법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물론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연습을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정말로 신기하게 유정이는 자전거를 혼자서 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때에도 그랬다. 자전거처럼 인라인을 타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그것대로 따라해 보자고 했다. 당연히 잘 안되었다. 미끄러지듯이 굴러가는 바퀴를 통제하지 못하는 유정이는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첫날의 인라인 타기는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유정이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혼자서 탔다. 나는 알게 되었다.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 된다.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어려워 하는 유정이에게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유정아 잘하고 있어. 자야 해. 유정이는 잠을 자야 그것이 유정이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된다니까. 생각해 봐. 자전거를 타던 날, 인라인을 타던 날, 첫날은 잘 안되었는데 자고 나니까 되었잖아. 잠을 자야 해.”
사람에게 휴식과 잠이 중요한 이유는 쉬지 않고 생각해야 하는 머리가 휴식과 잠의 시간 동안에 스스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휴식과 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5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가능하면 낮잠을 푹 자는 것이 결국에는 아이 성장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소위 말하는 ‘멍 때리기’는 정말로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습한 모든 것들은 내 머리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 유정이의 하루를 봐도 그렇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에 가야하고, 풀어야 할 문제집이 있고, 학원에도 가야하기 때문에 쉴 틈이 많지 않다. 어쩌면 그 틈새없는 스케줄은 부모인 엄마 아빠가 만든 것이다. 그 스케줄에는 아이를 잘 키우려는 부모의 욕망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소위 말하는 ‘멍 때리기’의 시간을 만들어두지 못한 체,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면서 아이를 보챈다. 달달 볶는다. 그리고 늘 말한다. 집중 좀 해라! 하루 종일 집중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유정이의 일과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멍 때릴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벌이인 우리 가정에서 엄마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은 아빠인 내가 해결해야 할 양육과 교육의 몫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이, 우리 가정도 엄마가 교육에 더 관심이 많다. 문제집, 학원 선택은 아내가 한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선생님인 내가 자녀 교육만큼은 확실하게 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내 눈에도 보인다. 그렇게 아내가 원하는 문제집과 학원 스케줄에 맞춘 일상을 나도 동참한다.
언젠가부터 자율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정이도 더 이상의 어린이가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라고 말하면서 보체지 않았다. 유정이에게도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온 유정이에게 말한다.
“1시부터는 이제 해야 할 일을 해! 더 이상 아빠는 잔소리 안한다. 아빠는 너 혼자서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