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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에버랜드의 추억

  

첫째 유정이는 1월생이었지만, 어린이 집에는 4살에 보냈다. 그만큼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맞벌이라서 어린이집에 일찍 보냈더라면 조금은 수월하게 직장생활을 했을 법도 했을텐데. 

  

아내는 학교 선생님이고, 나는 신문사에서 윤전기 엔지니어로 일하는 직업으로 교대 근무를 했다. 한 달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이어지는 두 달은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자정에 퇴근을 했다. 야간에 일해야 하는 특성상 직원의 피로를 생각해서 주 4일만 출근을 하는 근무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전에 출근할 때에는 장모님께서 유정이를 돌봐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왠만해서는 부탁을 드리지 않으려고 우리 부부는 노력했고, 그렇게 오후에 출근을 하는 두 달은 아침에 내가 유정이를 돌보다가 오후 3시가 넘으면 장모님이 잠깐 돌봐주셨다. 아내가 퇴근하기까지 유정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쉬는 날에는 꼬박 유정이와 함께 있었다. 잠이 많았던 나 였기에 쉬는 날에는 깊은 잠을 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정이와 하루를 보냈다.

  

지루하거나 피곤하지는 않았다. 입안이 자주 헐었던 것을 보아서 나는 분명 피곤했다. 그런데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유정이와 잘 놀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추억을 하나 꼽자면 에버랜드의 추억이다. 봄마다 나는 아이와 꽃구경을 갔다. 부천 원미산의 진달래 동산, 안양천 벚꽃 터널, 윤중로의 벚꽃, 구리 시민공원의 유채밭, 반포 서래섬의 청보리와 유채, 호수공원의 벚꽃은 봄마다 빼먹지 않고 가는 곳이었다. 하는 일이 그런지라, 평일에 시간이 있었던 나는 주말의 인파를 피해서 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내는 출근을 하고, 유정이와 밥을 먹었다. 아이와 밥을 먹고, 치우고, 양치를 해주고,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10시 정도가 되어야 모든 준비가 끝이 난다. 그날도 그랬다. 그렇게 윤중로로 출발을 했다. 

  

양화대교를 지나면서 저 앞에 윤중로의 벚꽃이 보였다. 기분이 너무 설레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이제 막 결혼을 한 가장 친한 친구였다. 비번이라서 아내와 에버랜드에 가는 중인데, 같이 놀러 가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선택의 딜레마가 빠르게 내 머리를 스쳐갔다. 일산에서 용인까지 가면 유정이는 괜찮을까? 차 많이 막히는 길인데? 나 혼자서 거기까지 가는 건 조금 버거운데? 그것도 잠시 ‘그러자’고 했다. 어디서 난 용기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꽃 구경 오려던 나의 계획은 일종의 ‘도전’같은 무모함으로 변했다. 그렇게 한남대교부터 서울 톨게이트까지의 막히는 길을 뚫고 에버랜드에 도착했다. 시간이 벌써 12시가 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유정이가 태어나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던 터라 너무나 반가웠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었다. 나는 아빠다. 밥을 먹어야 할 시간에 뭣이 중요한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빨리 밥을 먹으러 가야 했다. 

  

육아는 혼자하는 게 아님을 절실하게 느꼈다. 아이가 없었던 친구 부부는 유정이를 극진하게 대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어린 아이와 노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덕분에 나는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여유로운 식사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신나는 놀이동산을 누볐다. 평일인데도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서 1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들었지만 편하게 놀이동산에서 놀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정이와 너무 잘 놀아주어서 나의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자동차를 타면서 사파리의 동물을 구경했고, 회전목마를 탔다. 이제 딱 두 개를 탔는데 벌써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다소 계획적인 아빠다. 내 머리 속에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더 그렇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이가 낮잠을 자기 때문이다. 낮잠은 묘해서 너무 늦게 자면 밤에 도무지 잠을 잘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용인에서 집까지 가는 시간은 퇴근 시간과 겹친다. 집에 도착하면 몇 시가 될까? 그렇게 내 머리 속에서는 지금 출발을 해야 하는지? 더 놀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었다. 동시에 지금 출발하면 막히는 길에서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간단히 간식을 먹고 친구와 헤어졌다. 나도 더 놀고 싶다. 밤 늦게까지 오늘 하루를 불태우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나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렇게 굿바이를 했다.

  

재미있는 하루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에버랜드는 여전히 신나는 놀이터였다. 연애시절 아내와 마지막 불꽃놀이까지 보면서 놀았던 그때처럼 놀 수는 없어도, 유정이와 단둘이 보낸 오늘 하루는 너무나 근사한 추억이었다.

  

피곤했을 것이다. 카시트에 앉자마다 유정이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 역시 피곤했지만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집에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아빠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룸밀러로 잠이 든 유정이를 보면서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지금 너무 피곤하다. (ㅜㅜ)

  

에버랜드에 함께 놀던 친구도 이제 세 살의 아이가 있는 아빠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각자 아이 보면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오랜만에 전화로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나냐? 그때 참 고맙고 좋기도 했는데 엄청 피곤했거든. 만약에 너라면 아이하고 올 수 있겠냐?” 사뭇 친구 녀석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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