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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씨 없는 수박

  

주말이 되면, 아내의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5가족이 모였고, 아이들은 8명. 9,9,7,7,6.4.4.3살이 되었다. 엄마 아빠들끼리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아이들이 제법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 옆에 항상 부모가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는 없어도 된다고 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 아, 이제 좀 편하다. 아이들이 크니까 이제는 손이 필요없다.

- 여기서 누군가 꼭 늦둥이를 난다니까.

- (하하하)

- 맞아. 누가 될지 모르지만 이런 순간에 늦둥이를 낳아서 육아를 다시 시작하는거지.

- 나는 다시 그러고 싶지는 않다.

- 나는 씨 없는 수박이다. 나는 그럴 일 없다.

- 나도.

- 형은?

- 나도 씨 없는 수박이지.     

  

미칠 듯이 힘든 육아의 시간도 지나간다. 분명히 지나간다. 그러니까 미칠 듯이 힘든 그 순간을 버텨야 한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이 찾아온다. 주말에 모인 이 자리의 친구들이 그런 케이스다. 이제는 아이들끼리 놀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훌륭한 육아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놀았다.

  

아이들의 놀이는 끝이 없다. 놀만한 꺼리를 자기들끼리 찾아서 논다. 없으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이 아이들의 놀이다. 이제 3살이 된 막내도 언니 오빠들을 따라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정말로 신기하게 미칠 듯이 힘들었던 육아의 순간이 언제 있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육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이들 씻기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워야 하고, 밥도 챙겨 먹여야 한다. 잠을 안자면서 까지 놀고 싶은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서는 결국 영화 한편을 봐야 한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면서 잠을 잔다.

  

그리고 엄마 아빠들은 하나 둘씩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와서 술과 안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어른들의 밤은 더욱 깊이 이어졌다.


  

다시 하라면 하기 힘든 육아. 아빠들은 그것을 군대에 빗대어 설명하곤 했다. 다시 군대 가라면 갈 거야? 절대 아니다. 병장으로 시작하라고 하면 모를까? 다시 이등병 부터의 시작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것처럼 육아는 다시금 하기 힘들 것 같다. 솔직하게.

  

지금의 평온함. 이때를 즐겨야 할지도 모른다. 큰 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다. 이제 슬슬 고학년으로 넘어가면 엄마 친구들의 모임에 오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제주도라도 가서 만나면 아이들이 따라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스크림을 주면 좋아하고, 영화 보여주면 좋아하는 지금의 순간을 즐겨야 한다. 너희들도, 그리고 우리들도.


  

둘째를 낳고 친구와 통화를 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친구는 세 자녀의 아빠다.     


- 둘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셋이나 키우는 너가 참 부럽다. 대단하다고 생각해.

- 힘들어 죽겠어. 그냥 버티는거야. 가끔은 일부러 퇴근을 늦게한다. 죽을 것 같아서.

- 난 셋은 키우지 못하겠다. 그래서 수술했다.

- 나도 그때 수술할 걸 그랬다. 지금은 나도 씨 없는 수박이다.     

  

그렇게 둘이 웃으면서 통화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빠 인생에 너희들은 마지막 아이들이다. 너희들 키우는 순간들이 너무나 큰 기쁨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아빠는 솔직하게 힘도 들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빠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느낌은 훗날 너희들이 엄마 아빠가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힘듦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육아의 힘겨움은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빠가 많이 도와줄게. 그때는 아빠도 회사 안 갈테니까 시간도 많이 남을 거야. 그때 아이 키우는 고민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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