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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Y Dec 08. 2023

04 학부생과 현업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디자인' 관점

인턴 디자이너로 고민하는 모든 디자인학도를 위해



지금 쯤이면 종강 시즌이겠다. 밀려오는 과제를 버텨가는 동기들의 말속에 디자인학과 수업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작문하여 글감을 다듬고, 경영을 배우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시안을 하나 더 만드는 게 낫겠다는 원초적인 말들이 거론된다.


물론 다작이 디자이너로서 성장을 돕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지만, 오직 미적감각에 의존하여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하기란 한계점이 너무 낮다. 학부생임에도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배워선 안된다는 말'을 사회에 진입하기 전에 이해했지만, 말속에는 단단한 뼈가 있다는 것을 실무를 거쳐 진심으로 깨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실무에서 뜻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무경험 학부생에게 디자인을 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 입사 전 :  입사를 원한다면, 디자인을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디자이너 포지션에 지원하면 면접전형에서 '포트폴리오 질문'이나 '포트폴리오 PT'필수이다. "너의 디자인 감각이 우리 회사와 잘 맞는 것 같아. 우리는 이번 기회에서 널 더 알고 싶으니 디자인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니?"라고 부르는 게 면접이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은 결국 디자이너임에도 디자인하게 된 배경을 묻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평가는 추론, 문제해결 및 아이디어 도출과정의 연계성을 토대로 디자인 감각을 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턴 디자이너 지원자도 디자인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디자이너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면접에서 시간 가성비가 통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포트폴리오 질문은 날카롭기에 디자인 기획에 대한 설명을 명쾌하게 객관식으로 답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 PT는 제한시간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거의 1-2분 내외의 부문에서 평가되므로 필요 없는 부문은 제외되어야 한다. 여러 번 다대다 면접을 보며 내 디자인을 설명할 온갖 미사어구를 갖다 붙여도 귀에 안 들어오더라. 그러니, 디자인을 어떻게 수단으로써 활용했는지만 논리 있게 잘~ 설명하면 된다!




· 입사 후 : 실무에서 디자인은 경영전략이다.

재직 중인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영업을 위한 광고기획 및 브랜딩을 진행하며 대부분 B2B 품목을 진행하고 있다. 혹은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한 브랜드이지만 B2B와 B2C 영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B2B 브랜드의 클라이언트는 기업이다. 즉, 해당 산업군 전문가를 대상으로 평가받기에 매우 이성적이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감성 마케팅,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위한 오프라인 마케팅을 제안하는 B2C 브랜드와는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학부에서 배우는 ‘브랜드/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의 타깃은 대부분 ‘대중’을 생각하고 기획한다. 대중적인 상품만이 판매항목이라는 일차원 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인지 무작정 트렌디한 디자인 전략을 세운다. 어떻게 하면 특정 F&B 브랜드가 타깃 대중에게도 트렌디하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여 시각체계를 세우고 어플리케이션을 적용할지 딱 그 수준이었다. 그러나, 타깃이 ‘기업’이 되면 트렌디함 보다는 브랜딩을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점, 서비스 지속 가능성”을 강조해야 한다. 


B2C 브랜드는 개인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유희적, 감성적 접근이 적합하다. 접근성도 커뮤니티 카페를 둘러보거나 직접 서비스를 경험해 볼 수 있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B2B 브랜드는 타깃이 매우 명확해 접근성이 높을뿐더러, 단순히 감성적인 부분에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나 사용 경험이 담겨있어야 한다. 이는 회사를 다니며 괴리감이 들면서 수긍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었는데 "보기 좋고 트렌디한 디자인이 우선시 되지 않는 품목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위치하고 있는 시장에서의 디자인은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B2B브랜딩 프로젝트가 아니라 B2C, C2C 혹은 입찰 PT나 사업제안서를 작업할 때에도 모두 동일했다.




· 모든 디자이너 : 디자이너의 역할은 시안제작가가 아니더라.

인턴 디자이너로서 실무 브랜딩 프로젝트를 이해하며 '경영단계에서의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이 로고를 유려하게 다듬을 수 있을까?"에 그쳤던 디자인 기획을, "어떻게 하면 이 산업에서 디자인으로 레드오션 시장을 깨부술 수 있을까?"와 같은 전략적인 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해 보았다. 


브랜드 히스토리와 클라이언트 디렉션만 존재한 채 신규 론칭을 준비하는 브랜딩 입찰 PT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하였는데, 문제는 제품 이름도 미정인 채로 카피라이팅과 비주얼라이징 동시 진행이었다. 결국은 디자인 아이디에이션을 제품 개발 프로세스 설명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 난 조사영역을 잘게 나눈 후 무작정 리서치를 한다. 당시에도 데스크리서치 결과 타사 제품들이 표현은 좋지만 비슷한 카피라이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찾아내었고, 이를 비꼴 수 있는 언어유희적 카피라이팅을 프로젝트 네임으로 작성하여 카피에 맞는 타입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카피라이팅을 통해 자연스럽게 디자인 기획도 녹여낼 수 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부에 카피라이터가 있어 작성하였던 헤드카피는 쓰이지 못했지만 비주얼아이디어가 발탁되어 실제 PT자료로 제작되었을 때는 짜릿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디자인에 전략을 더한다면 주관적인 피드백에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가깝게 프로젝트를 이끄는 성공을 맛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디자이너는 타 부서가 갖지 못한 '디자인씽킹' 능력을 갖고 있다. 아마, 우리가 학부생 때 배우는 모든 과정들은 '시안을 잘 만드는 방법'에 치중되어야 하기보단, '디자인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치중되어 본인을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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