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Bonanza Coffee Roasters
보난자커피 한국 진출기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3위로 꼽히는 ‘대한민국’이라는 격전지에 글로벌 카페 브랜드는 각자 만의 차별성을 내세우며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음에도 한국 커피 시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새로움에 거리낌이 없는 2030 소비자의 특성 때문이다. 때문에 여러 브랜드가 고유한 개성을 어필하며 특정한 고객을 후킹 하고자 발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브랜드가 익숙해지는 순간 발생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하고 잊히기를 반복하는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르고, 많이 그리고 훌륭하게” 전략을 내걸고 어필해야 한다. 즉, 로컬 시장의 니즈와 특징을 받아들이며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 브랜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
전에 보난자 커피가 위치한 독일은 한국과 커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카페 하우스 문화가 일반적이고 테이크아웃보다는 매장 내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반면, 한국은 카페라는 공간을 하나의 경험 수단으로 접근하거나 빠르게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각성 음료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을 쓰는 지금 한국 입점 5주년을 맞이한 보난자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브랜딩 방법을 보여주며 한국 커피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며 다른 성향을 가진 글로벌 카페 브랜드가 한국 로컬 기질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브랜드의 쓰임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을 알아가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적인 브랜딩 혹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보난자만의 경험을 구축하기
보난자가 ‘죽기 전에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독일 3대 로스터리 커피’를 내세우며 한국에 입점하였을 때, 1차적으로는 브랜드 코어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성격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다. 2차적으로 브랜드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은 소비자와의 관계성을 정립하고 타국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는 부수적인 요소인 셈이다.
한국 현지화 브랜딩 방법에 있어 보난자 커피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공간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가는 전략을 택했다. ‘독일 보난자’는 실존하는 공간이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방문이 어려운 한국 소비자를 위하여 군자 본점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브랜드 고유의 가치성을 경험하길 의도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유일하게 단독 건물로 남아있는 ‘군자 본점’에서 보난자의 아이덴티티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보난자는 독일 로스터리 카페 만의 편안한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자연경관을 중점으로 따스하고 넓은 공간을 조성하였다. 특히 여유로운 좌석 수와 통창으로 바라보는 자연경관의 조합은 유럽 특유의 잔잔하고 감성적인 면을 느끼도록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독일과 한국 군자 본점을 비교해 보았을 때 같은 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구현력을 보여준다.
이를 시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70:25:5 비율의 균형감 있는 인테리어 컬러 시스템을 기반으로 공간 구성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반으로 짜인 가구의 소재, 플렌테리어의 조합은 독일과 한국 매장의 이질감을 극소화하여 ‘보난자다운’ 공간을 완성했다.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일함을 선사하기
브랜드 원칙과 핵심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로컬에 맞는 유연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보난자는 이를 패키지디자인과 공간 브랜딩 확장 방식을 통해 ‘한국적인 이미지’에 걸맞은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간
보난자는 군자점을 본점으로 두고 대형 복합 쇼핑몰을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 공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개인 매장에 비해 대형 복합 쇼핑몰은 입점이 용이하고 다양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는 대신 상품 전개의 차별성을 두어 브랜드의 성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군자 본점과 명동점을 제외한 인천 롯데백화점, 수원 스타필드, 파주 신세계아울렛의 첫인상은 보난자 만의 이미지를 한 번에 인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독일 보난자에서 느낄 수 없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고 인식된다. 앞서 언급한 인테리어 컬러 시스템 비율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반면 군자 본점에서 해석할 수 없는 한국 친화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준 이후 커피의 맛으로 브랜드 고유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분점에서도 동일한 디자인의 굿즈를 판매하여 최소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담아내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패키지 디자인(굿즈)
커피를 마시는 문화적 차이에 의해 독일 현지에서는 필수적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필수적인 ‘테이크아웃 용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패키지디자인은 브랜드의 총체적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훌륭한 소재이기에 집약적인 이미지를 기획하고 제작할 필요가 있다.
보난자가 테이크아웃 디자인에 도입한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이다. 꾸밈없이 단조롭고 여유로운 보난자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는 적절하나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느끼기에는 한계점이 많다. 만일 미니멀리즘을 유지할지라도 종이 질감에 차별성을 주어 촉감이 주는 이미지를 기획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신 보난자커피는 다양한 굿즈를 선보임으로써 브랜드의 가능성을 펼쳐두었다. 테이크아웃 용기 외에 커피 문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로고 플레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패션 액세서리와 문구류는 필요가 아닌 브랜드 가치에 목적을 두고 소비하는 한국 소비자의 심리를 전략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전통 보자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프트 박스는 현지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제안하여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적인 디자인
디자인은 문화적 기질을 반영한다. 디자인 학계에서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서 한국적인 디자인을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듯하다. 현재까지도 한국적인 디자인을 전통과 문화를 연상시켜야 한다는 고착화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싫증을 느꼈다.
토착에 대한 추구만이 정답일지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 한국에서 브랜딩을 시도한 글로벌 브랜드를 리스트업 하였다. 그중 보난자커피는 생활양식에 있어 한국과 큰 차이점을 갖고 있었고 이들이 포착한 한국의 특성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는 지를 톺아보며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으려 시도하였다.
리서치를 위해 보난자 커피 군자점에 방문하였을 때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다. 옆에 바리스타가 있음에도 메뉴 설명을 키오스크로 확인하고 주문하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바리스타와의 대면보다 '간편하고 빠른' 키오스크 주문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는 현금 없는 서비스가 이미 대중화되었기 때문일까. 다른 방문객들 또한 기계 주문이 낯설지는 않아 보였다. 게다가 ORDER 종착지를 키오스크로 유도하는 것을 보아 당연한 루트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뜩 독일 로스터리 카페 방문객도 키오스크 주문 서비스에 저항 없이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비록 독일 보난자 커피에 직접 방문한 경험은 없었지만 아마 한국의 유일무이한 시스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보난자커피가 키오스크를 택하게 된 계기 또한 “빠르고, 많이 그리고 훌륭한" 공간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현대의 한국적 디자인이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생활양식으로 일컫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