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이야기
물잔에 물을 가득 채우면 결국 넘칩니다. 칼날을 끝까지 벼리면 오히려 부러집니다. 재물을 끝없이 쌓아 올리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따라옵니다.
노자는 이 모든 장면을 묶어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라. 그것이 하늘의 길이다.”
오래 가는 삶은 더 많이 가지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멈출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붙잡아 채우는 능력보다 그만둘 줄 아는 지혜가 사람과 공동체를 살립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가득 채우려 애쓰는 것은 이미 균열을 향해 가는 일이라고. 날카롭게 만들수록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때부터 지켜야 할 것이 생깁니다. 부귀가 교만으로 바뀌는 순간 성취는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이루었거든, 물러나라.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끝맺음의 기술입니다.
자연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봄은 자기 일을 마치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폭풍도 오래 머물지 않고
소나기도 하루 종일 쏟아지지 않습니다. 지속은 멈춤을 포함합니다.
공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넘침과 모자람은 모양만 다를 뿐 둘 다 중심을 잃은 상태입니다. 사람은 채워야 안심되고 더 높아져야 만족할 것 같지만 채움의 끝에는 늘 불안이 서 있습니다.
노자는 결과를 움켜쥐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과에 머물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功)이 아니라
덕(德)을 기억합니다.
신앙의 길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끝났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 물러남이 메시아의 길을 열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아쉬움처럼 보이지만 그 멈춤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냈습니다.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 앞에서 넘치려는 열심을 족함의 신앙으로 다듬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더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러남이 구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늘 이렇습니다. 이룸 다음의 비움, 영광 다음의 침묵, 능력 다음의 내려놓음. 그래서 그 일은 오래 갑니다.
넘침은 빨리 무너지고, 그침은 오래 남습니다. 이루었거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