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람과 고난의 자리에서

열세 번째 이야기

by 이지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부풀고, 비난을 받으면 쉽게 무너집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끼면 안심하고, 외면당한다고 느끼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노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아주 짧은 말로 건드립니다.

“총애와 수모를 놀란 듯이 여겨라.”

얻어도 놀라고, 잃어도 놀라는 상태. 노자가 보기에 우리는 늘 그런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정받을 때는 혹시 이걸 잃게 될까 불안하고, 외면당할 때는 혹시 이 상태가 계속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항상 밖을 향해 열려 있고, 그만큼 쉽게 흔들립니다.

노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큰 근심을 몸처럼 귀히 여겨라.”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오래 머뭇거렸습니다. 고난을 왜 귀히 여기라고 말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게 근심이 있는 것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몸이 없다면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우리는 종종 근심을 없애야 할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말합니다. 근심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몸이 있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다는 뜻이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자신의 몸을 천하처럼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야 세상을 맡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의 시선에 매여 자기 몸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결국 세상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삶은 결국 자신도, 타인도 지치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노자의 사유는 의외로 현실적입니다.자기 생명을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생명도 귀히 여길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관계 안에서도 오래 머뭅니다.

신앙의 자리에서도 비슷한 역설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말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몸과 마음을 함부로 다루는 모습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그분께는 결핍이 없다고.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은 사실 하나님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회복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가장 가까워진 사람들은 늘 자기 의로움을 내려놓은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었던 사람, 자기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정직하게 인정한 사람이 은혜의 자리에 섰습니다.삭개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인정받기 위해 나누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랑 하나로 이미 충분했습니다. 배가 채워지자 나눔은 계산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습니다.

노자가 말한 ‘몸을 귀히 여긴다’는 말은 이기적으로 살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말, 남의 평가보다 자기 존재를 먼저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세상을 감당할 힘을 얻습니다.


사유의 한마디

남의 총애에 흔들릴수록 자기 몸은 가벼워집니다. 자신을 귀히 여길 때, 비로소 삶을 맡길 자리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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