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는 다스림

열일곱 번째 이야기

by 이지

우리는 눈에 띄는 힘을 신뢰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 앞에 서는 사람, 존재감을 남기는 사람을 지도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노자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가장 좋은 다스림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는 앞에서 끌지 않고, 뒤에서 밀지 않습니다. 명령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가 사라져도 세상은 흔들리지 않고,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일은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

노자가 말한 가장 높은 다스림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지도자가 앞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결과를 소유하지 않는 자리. 그의 부재는 무능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입니다.

노자는 다스림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친근함으로 칭송받는 자리, 두려움으로 움직이게 하는 자리, 마침내 업신여김을 받는 자리.

아래로 내려갈수록 말은 많아지고, 통제는 강해지며, 신뢰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노자는 짧게 말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대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사람은 이미 믿고 있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맡겼습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흐름을 해치지 않는 지혜입니다. 간섭하지 않음으로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 앞에 서지 않음으로 길을 가리키는 것.

노자의 이상은 지도자가 사라진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 권력이 이름을 잃고 신뢰만 남아 있는 자리. 그곳에서는 다스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은 더 단단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리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해는 떠오르고, 씨앗은 자랍니다. 그분은 강요하지 않으시고, 자유 속에서 질서를 이루십니다.

예수님도 같은 길을 가셨습니다. 드러나기보다 숨으셨고, 명령하기보다 사람을 믿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하신 것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믿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모든 일을 이루셨지만,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였습니다.

사랑은 붙잡지 않을 때 드러나고, 통치는 사라질 때 완성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설득하기보다 믿어주는 일, 앞서기보다 자리를 내어주는 일, 통제하기보다 기다려 주는 일.

그 조용한 태도 속에서 하늘의 정치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유의 한마디

말보다 신뢰가 깊고, 통제보다 기다림이 강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감춤으로 우리의 자유를 지키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