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이야기
사람이 너무 똑똑해지면 세상은 더 복잡해집니다. 지혜를 자랑하면 교만이 생기고, 의로움을 내세우면 판단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개 누군가를 향합니다.
노자는 이 지점을 아주 과감하게 건드립니다.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에게 이로움이 백 배나 된다고 말합니다. 어진 체함과 의로움을 버리면 사람들은 다시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를 돌보게 된다고 합니다.기교와 이익을 버리면 도둑이 사라진다고도 말합니다.
이 말은 도덕을 없애자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노자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굳이 성스러움을 말해야 하는가.
왜 지혜와 의로움을 증명하려 드는가.
그것들이 말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흐를 때는 인의를 외칠 필요가 없고, 신뢰가 살아 있을 때는 의로움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 세 가지마저도 아직 꾸밈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합니다. 바탕을 드러내고, 질박함을 품으라고. 사심을 줄이고, 욕망을 덜어내라고.
질박함은 미련함이 아닙니다. 꾸밈이 없는 상태입니다. 꾸밈이 사라지면 비교가 사라지고, 비교가 사라지면 시기와 분노도 함께 잦아듭니다.
사람은 자신을 빛내려 할수록 더 많은 가면을 쓰게 되고, 그 가면이 많아질수록 관계는 얕아집니다. 노자가 살던 시대도 혼란의 시대였습니다.정치는 무너지고, 도덕은 외쳐졌으며, 사람들은 더 많은 법과 교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그 교리는 새로운 위선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더 근원적인 자리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손대지 않은 마음으로.
그는 문명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구원은 더 정교해지는 데 있지 않고, 더 본래적인 인간됨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경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꾸며진 기도, 과시하는 헌신, 외식하는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상한 심령, 꾸밈 없는 마음입니다.
노자가 말한 ‘질박함’은 성경이 말하는 ‘상한 심령’과 닮아 있습니다. 화려한 언변보다 침묵이 낫고, 정교한 전략보다 정직한 마음이 낫습니다. 그것은 단순함이 아니라 투명함입니다.
사람은 더 나은 신앙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덜어내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완벽한 계획보다 불완전한 나를
그대로 내어놓는 용기, 그 자리에서 사랑은 다시 시작됩니다.
노자가 말한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라”는 말은 복음 안에서 이렇게 들립니다.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신앙의 길은 더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더 단순해지는 길입니다. 꾸밈을 버리고 바탕으로 돌아가는 길.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빚으십니다.
하나님은 꾸며진 거룩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질박한 마음 위에 사랑은 다시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