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을 했고 그들은 귀신을 봤다

주절주절

by 이지

집 바로 옆에 학교가 하나 있다.
공식적으로 개방된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을 위해 운동장을 암암리에 열어 두는 곳이다.

밤이 되면 동네 사람 몇 명이 슬쩍 와서 걷거나 뛰곤 한다.

나도 가끔 그곳에 간다.


나는 밤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낮의 운동장은 너무 밝고 시끄럽다. 사람도 많고 시선도 많다.

그런데 밤의 운동장은 다르다.

불빛은 희미하고, 운동장은 넓게 비어 있다.

트랙을 몇 바퀴 돌다 보면 발소리와 숨소리만 남는다.

그 정도의 고요가 좋다.


몇 바퀴를 돌고 나면 운동장 구석에 있는 평행봉으로 간다.
몇 번 몸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 그날 운동은 대충 끝난다.


얼마 전에도 여느 때처럼 밤에 운동장에 갔다.
트랙을 몇 바퀴 돌고 평행봉 쪽으로 걸어가는데

학생 몇 명이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에 몰래 놀러 나온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트랙을 따라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평행봉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아이들 쪽에서 갑자기

“꺄아아악!”

하는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는 우르르 도망가 버렸다.


나는 잠깐 멈춰 서 있었다.

뭐지?

주변을 둘러봤다.

운동장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조용했고,

나는 평소처럼 평행봉 앞에 서 있었다.

이상할 것도 없는 장면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운동장에 갔는데 애들이 나 보고 비명을 지르더라.”

아내는 그냥 웃었다.


며칠 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운동장에 갔다.
아내와 아이는 골대 앞에서 공을 차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트랙을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운동장 구석, 평행봉으로 갔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아내가 말했다.


“이제 알겠다.”


“뭘?”


“그 애들이 왜 비명을 질렀는지.”


나는 왜냐고 물었다.

아내는 평행봉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여기 밤에 보면 잘 안 보이잖아.”


“응.”


“근데 저 구석에서 검은 물체가 막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됐다.

그 아이들 눈에는 운동장 구석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가 갑자기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장면은

나에게는 운동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의 공포 영화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운동장에서 나는 평행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눈에는 나는 귀신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자기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은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나를 해석할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설명과 해석 사이의 간격이 있다.


나는 평행봉을 했고

그들은 귀신을 봤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각자는 자기 이야기를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다른 존재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그저 운동하는 사람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나는

한 밤 중에 운동장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일 것이다.


그날 밤 운동장에서 나는 평행봉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귀신을 봤다.


아마 우리 사는 사회라는 것도
딱 그 정도의 간격 위에서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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