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한 노후라는 말

주절주절절주절

by 이지

유튜브에서 가끔 듣는 부동산 관련 방송을 듣다가 어떤 말이 귀에 걸렸다.

“윤택한 노후.”


방송에서는 늘 흘러가는 말이었다.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부동산을 잘 선택해야 한다, 투자를 잘 해야 한다.

그러면 윤택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마치 문장 속에 작은 돌 하나가 들어간 것처럼, 그 말이 “턱” 하고 멈추었다.

윤택한 노후.


생각해 보면 누구나 바라는 말이다.
노년이 안정되고 편안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당연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삶의 불안이 조금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허무함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랬을까.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세월호와 용산참사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어제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이 어느 날 부고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기 저기서 전쟁 중이다.


삶이 생각보다 훨씬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때 자주 목격했다.

그래서인지 “윤택한 노후”라는 말이 갑자기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마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계산하고 있는 말처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하나의 시간이 숨어 있다.

지금은 준비하고 나중에 누린다.


이것은 사실 자본의 시간이다.
자본은 언제나 미래를 약속한다.

지금 투자하면 나중에 더 좋은 시간이 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삶을 긴 계산의 과정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렇지만 삶의 시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흐르지 않는다.

삶은 때때로 아무 예고 없이 방향을 바꾸고,

우리가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멈추기도 한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지만

미래를 보장받고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나는 이제 40대 중반이다.
노후가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집도 없고 특별히 준비된 것도 없다.

현실적인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삶이 그렇게 계산 가능한 것일까.

지금을 조금 희생하고 미래를 준비하면 언젠가 윤택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물론 준비는 필요하다.
사람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어딘가 삶을 너무 단순하게 만드는 전제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삶이 하나의 직선처럼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준비하고 나중에 누린다.


그러나 삶은 직선이라기보다 오히려 불확실한 시간의 연속에 가깝다.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살아간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오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윤택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보다
지금의 삶이 제대로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라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돈은 분명 삶의 안전망이 된다.

그렇지만 돈이 삶을 완성해 주지는 않는다.


노년의 삶을 생각해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건강과 관계,

그리고 마음의 평안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시간의 무게다.

그래서 '윤택한 노후'라는 말보다 '잘 살아온 노년'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이 말에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들어 있다.


어쩌면 노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 본다.

윤택한 노후를 꿈꾸기보다 오늘의 삶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그러면 언젠가 노년이 오더라도

그 시간은 적어도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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