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없는 첫 명절,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번 설은 구정 말고 신정 쇠자”
어머니가 갑자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하셨다. 구정이 아니라 신정 하루만 쇠자는 소리를 하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 해외여행을 가시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시누까지 일본 여행을 가신단다. 아마도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시누가 여행을 계획했는데 부모님도 같이 모시고 가게 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시누이와 함께 갈 여행에 대해 끊임없이 자랑을 하셨다. 그러나 난 어머니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고 그저 구정에 자유의 몸이 된다는 사실에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절대 웃으면 안 돼. 좋아하는 티 내지 마’를 계속해서 되뇌며 어머니 여행을 부러워하는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비로소 나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마음껏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해서 “ 엄마! 어머니가 이번 명절에 신정 쇠자고 하시네. 구정에 엄마집에도 일찍 가고 우리 가족 좀 쉬어도 되나? “ 하고 물었다.
엄마아빠는 친정식구 자주 보는데 뭘 오냐며 그냥 너희끼리 놀러 가거나 쉬라고 하셨다. 엄마도 구정에 자유로워진 딸의 기분을 이해하는지 신경 쓰지 말라고 해주셨다.
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지는 명절 휴식에 설레기까지 했다. 솔직히 명절이라고 뭐 대단한 걸 하는 며느리가 전혀 아니지만 그저 시댁에 안 가는 것만으로도 또 시댁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친구들에게도 “야, 나 시댁에서 안자도 된다. 신정 쇠기로 했어”라고 말하니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인지 부러움과 동시에 축하(?)까지 받았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 다시는 없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이 분명했기에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나 보다.
양가에게서 자유를 허락받은 남편과 나는 우리도 구정에 어디 놀러 가보자며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연휴는 연휴인지라 어디를 알아보든 너무 비쌌다. 호캉스라도 즐겨보려 했는데 평소 가격의 두 배 이상이라 선뜻 예약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대의 놀거리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일찍 모인 1월 1일 신정.
우리는 부모님께 드릴 설 용돈도 미리 준비하고 아이 한복도 곱게 입혀갔다. 올해의 시작을 기분 좋게 보내고 있던 무렵 어머니께서 무심히 한마디 하셨다.
“우리는 구정 당일에 도착한다. 연휴 기니까 한 번 오던가~”
아… 우리 어머니. 역시 우리 어머니.
그럴 거면 신정 쇤다고 말씀이나 하지 마시지 굳이 신정, 구정 두 번이나 왔다 갔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안 하고 못 들은 척했다. 남편도 약간 당황한 듯했고 그 자리에서 딱 잘라 신정 쇠는 것으로 끝이라는 말은 못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구정 당일 오전에 돌아오고 구정 연휴도 기니까 그때 한 번 더 와도 된다고 굳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그 상황을 외면해 버렸다. 지금까지 나를 설레게 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자유로운 구정을 기대하며 좋았던 날들, 친구들과 엄마에게 하하 호호 구정이 기다려진다고 했던 순간들, 남편과 같이 여행할 계획을 세웠던 시간들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 먹구름은 나의 감정까지 침투하여 순식간에 날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날이 좋더라니.
하지만 난 이런 기회를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신정 쇠자고 먼저 말씀하셨고 그래서 신정에 우리가 온 거잖아. 난 구정은 정말 우리끼리 쉬어보고 싶어. 어머니께 이미 우리도 여행 계획 세웠다고 말씀드리고 이번 구정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편도 내 말에 동의해 주었고 어머니께 잘 말해보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난 구정에 자유를 얻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는 명절이자 그 지긋지긋한 1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명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근교에 아이가 즐거워할 곳을 방문하며 하루하루 시간을 알차게 보냈고 나는 시댁 스트레스 없는 팔자 좋고 행복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실컷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해외여행을 가시니 어머니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앞으로 명절마다 시부모님 해외여행을 보내드려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집의 상황을 아는 분이라면 며느리인 내가 이렇게 룰루랄라 행복하다면 반드시 의심해보아야 한다. 반대로 어머니의 심기가 매우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여행을 다녀오신 건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부들부들 화를 쌓아두고 계셨고 결국 아들에게 폭발하셨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기록하겠다.)
그래도 난 후회는 없다. 어머니께서 먼저 신정 쇠자고 하여 신정에 할 도리는 다 하였고, 구정엔 우리 가족만의 오붓하고 한적한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매년 이렇게 살고 싶지만 한국인이자 자식 된 도리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대신 내 다음 세대에게는 더 자유롭고 편안한 명절을 선물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명절에 비행기 티켓이 매진되고 호텔 예약이 마감되며 여행 성수기라는 걸 보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아이에게 혹은 내 아이의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내가 느낀 명절의 홀가분함을 꼭 주고 싶어졌다. 조상에 대한 감사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잃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어 가족 간의 유대감이 더욱 돈독해지는 날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