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아이를 간호하는 나에게 하는 말
아이가 많이 아팠다.
사람이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내 새끼가 아픈 건 자주 있는 일이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가 처음 아픈 날, 콧물이 나오는 감기에 걸려 열이 올랐던 것뿐인데 펑펑 울었다. 자식은 감기에만 걸려도 가슴이 아리고 아픈 게 사실이었다. 이제는 감기 걸렸다고 울지는 않지만 기침으로 밤새 고생하며 자는 아이를 다독이며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고 늘 생각한다.
내 아이는 코로나에 두 번이나 걸렸다. 작년에 기관에서 옮겨와 처음 걸렸고 몇 개월 후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처음 걸렸을 땐 열도 많이 안 나고 콧물만 2주 내내 흘리며 가볍게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두 번째 코로나는 고열과 함께 기침을 동반한 증세로 아주 혹독하게 병치레를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코로나에 걸려 앓고 지나간 후에 시작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가끔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기 증세도 없는데 단순히 열이 확 올랐다가 이틀 정도 후에 떨어지는 것이다. 코로나 후유증인가 싶어 지켜보다가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에 가보았다. 그러나 딱히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없었고 열이 떨어지면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열이 오르는 횟수가 잦아지고 기간이 좀 길어지는 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도 이번에는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갑자기 확 긴장이 되었다. 피검사라니…… 그리고 들은 결과는 더욱 청천벽력과 같았다.
염증수치가 너무 높으니 당장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내가 듣게 되다니, 그것도 내 일이 아닌 내 아이가 아파서 듣게 되다니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이 힘들었다. 하지만 슬퍼하고 두려워할 시간도 아깝기에 신속하게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소견서를 들고 달려갔다.
우리나라 병원 체계를 잘 모르지만 아이는 큰 병원에서 또 피를 뽑아야만 했고(두 번씩이나 왜 반복해서 검사를 해야만 하는지) CT촬영도 해야 했다.
CT촬영은 아이가 잠들어야 해서 진정제를 투여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진정제 투여가 싫어서 재우고 할까 고민했지만 아이가 중간에 깨거나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진정제 투여에 동의했다. 예민한 아이라서 병원에서 잘 잠들지도 않았고 중간에 깨서 공포에 질려 울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정제 투여를 하고 난 뒤 슬슬 쳐지며 눈이 감기는 아이를 보는데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는 또 정신줄을 잡고 있느라 온몸이 긴장상태였다.
결과는 임파선 염증으로 인한 고열. 입원을 권유받아 입원 수속을 밟고 남편에게 짐을 다 챙겨 오라고 연락했다. 원인을 찾아서 감사했다. 대한민국 의료진이 얼마나 대단한데 입원해서 치료받으면 다 낫겠지 라며 긍정회로를 돌리기로 했다. 아이는 낯선 환경과 힘든 몸상태로 더 예민해졌고 날카롭게 엄마만 찾았다. 이럴 때일수록 엄마는 여유 있고 평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 아이를 보고 웃어주려 노력했다. 아이가 아플 때 직장을 다니는 게 죄인인 부모는 입원기간 동안 아이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다 때려치우고 내 새끼만 돌보고 싶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기에 남편과 나는 고스란히 연차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프니 가정의 균형이 무너진 것처럼 휘청댔다. 아이가 그저 건강히 하루하루 살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보다 더 강했다. 엄마보다 더 의연하게 병원 생활에 적응했고 의사 선생님께 이제 피 좀 그만 뽑으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피로감이 쌓여갈 무렵 어머니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애는 괜찮니? 밥은 어떻게 먹여? 의사는 뭐라니? “
아이의 상태를 물으시고 호전되는 상황에 한시름 놓으신 듯했다. 걱정과 긴장의 끈이 탁 놓이셨던 탓일까. 어머니는 속앓이 했던 감정을 나에게 다 쏟아내셨다.
너는 애가 그렇게 되도록 뭘 했니, 애가 열이 나면 바로 큰 병원에 가보던가 해야지, 애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겠니, 병원에서 사진 찍고 그러는 것도 사실 몸에 안 좋다는데 우리 아기 아파서 어쩌니,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인데 답답하게 병원에나 있고.. 등등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이미 내가 나에게 무수하게 했던 말들이고 아이가 잠든 밤, 수없이 많이 자책했던 생각들이었다. 아이에게 꽂힌 주삿바늘을 보며 눈물을 워낙 꾹꾹 눌러댔던 탓일까 어머니 원성에도 난 메마른 사람처럼 건조하게 듣고만 있었다. 손주가 아프니 속상해서 하신 말씀인 건 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나를 혼낼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어머니의 말에 그 어떤 에너지도 쓰고 싶지 않았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듣다 듣다 어머니께 한마디 했다.
“어머니, 속상하신 건 알겠는데요 제가 제일 속상하고 가슴 아파요.”
차가운 내 목소리에 어머니도 멈칫하셨다. 그래 너도 고생이지라고 뒤늦게 나도 챙겨주셨지만 당연히 나보단 자신의 손주가 먼저 보이셨을 거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차이인 걸까. 친정엄마는 손주 걱정은 물론 내가 잠은 편히 자는지 보호자 식사는 어떤지 물어봐주었지만 시어머니는 내 탓하기 바쁘셨다. 너무나 당연한 거라 전혀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글에 한 자 더 추가될 이야기일 뿐 늘 그래왔던 대로 반전 없는 시나리오여서 허탈하고 씁쓸하긴 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우리 아인 고작 10일 정도 입원하고 나았지만 긴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안타깝다.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얼른 건강한 일상을 되찾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