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역, 여덟시 삼십분

일상의 사색

by 윤호

천호역 여덟시 삼십분.

8호선과 5호선으로 환승하려는 직장인들이 지각을 면할 수 있는 마지노선.


옥구슬 구르듯 청아한 열차의 알림이 플랫폼에 울려퍼지면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이것은 흡사 전투력.

환승에 실패하면 오늘은 지각이다.


한평 남짓한 작은 구멍에서 토해내듯 쏟아지는 수많은 사람들과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

혼돈 속에서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놀라운 질서.


떠밀리고 구겨지고 째려보고 한숨쉬며 소멸되는 인격.

가까스로 닫히는 문에 메달려 탑승에 성공한 자의 묘한 안도감.


뒤로 꺾인 내 팔은 움직일수도 없고 누군지 모를 누군가의 발 위에 얻어져 있는 내 하찮은 발.

내 몸에 붙어있는 신체의 조각들을 내 의지로 있어야 할 자리로 불러오고 싶으나 도무지 움직일수 조차 없는 빈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매일의 인연을 손꼽으면 지구를 몇바퀴 돌까.


그야말로 아수라장에서 사람들의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향해 있다.

“거참, 좁은데 스마트폰 좀!!”

삭막한 출근길에 메마른 마음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 성추행이 사라졌다.

내 직장생활 초창기 시절, 지하철과 버스에서 때로 은밀하게 때로 과감하게 자행되었던 성추행의 역사.


그것이 사라진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스마트폰 너머 어딘가 자신만의 세계에 욕망을 숨기고 분노를 숨기고, 즐거움을 찾고 위안을 얻는 우리들.

어느새 짜증은 짠함으로 바뀌었다.


나도 스마트폰의 <패스오더> 앱을 열고, 모닝커피를 주문한다.

5분 후에 나를 위한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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