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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짧아진 텔로미어


초침이 젖어 있었다.

그날 시계는 물기를 닦고 있었고 마음은 습도로 측정되었다.

사랑은 축축한 장면이거나 걸레에 관한 연극이었다.


고백은 이도 저도 아닌 곳에서 미끄러졌고 나는 그 말들의 잔해를 지켜봤다.

발자국은 내가 만들었지만 그 길은 나에게 속하지 않았다.

사랑한 만큼 낯 까닭에.


구름은 말을 흘렸고 그 말은 스키드마크처럼 눌어붙었다.

키스를 흉내 낸 사고처럼.


창밖을 오래 본 끝에 풍경의 냄새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비는 모든 증거를 지웠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앉아다.


웅덩이는 침묵을 담았고

나는 그 옆을 피하다 결국 그 안으로 들어갔다. 말이 없어도 말이 되는 공간.


되돌아온 집엔 무릎 꿇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그게 나였다.

그게 누구라도 상관없는 밤이었다.


나는 나를 따라 걸었다. 자국을 지우기 위해.

누군가의 순례를 훔치는 사람처럼.

밤이 깊어질수록 떤 마음들이 계단처럼 쌓여갔다.


아직 가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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