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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말

by 짧아진 텔로미어

누에의 말


다섯 번째 밤.

다섯 번의 탈피(脫皮).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몸 안에 실이 웃자다.


팔다리 묶고

검게 퇴화된 날갯죽지 그늘 안으로 접으면

마침표 부재인 감정이

고치를 을 시간.


고치는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목에 걸린 .

굳은 껍질 틈으로 터져 나온 날개 말려 펴본다.


‘등에 붙은 건 날개지만

하늘이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가늘게 누에의 말을 번역한다.


문장 속 여백을 씹어도

나는 나를 번역하지 못했다.

말은 너무 작아 지워지고, 너무 커 읽히지 않았다.


떠오름은 무너짐의 다른 방식.

날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토록 길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아닌 그림자에게 처음 말했다.


나는 누에의 입을 가지고 말로 고치를 짓는 사람.


고치를 짓는 누에,

벽을 세우는 나.

둘 다 안쪽에서만 만든다.


누에는 다섯 번, 나는 셀 수 없이 껍질을 벗었다.

탈피라는 말에는 껍질이 없다.

다섯 번 벗은 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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