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 (斷想)

by 짧아진 텔로미어

진료실 단상 (斷想)


진료실 문은

두 세상이 만나는 가장 얇은 벽이다.

한쪽은 불안이 배회하는 공간.

건너편 나는

희망과 절망이 얼비치는 무늬를 응시한다.


날 선 기계음이 벽을 가르고

불안을 두른 이들이 경계를 넘는다.

어깨 위에 얹힌 각기 다른 무늬의 삶.

사람들은 살아온 무늬를 펼친다.


침묵으로 눌러 담은 아픔.

봉합되지 못한 상처는 상흔으로 남았다.

희망만 응시하는 그들.

절망의 윤곽까지 마주해야 하는 나.


처방전을 쓰는 손끝이 묵직해진다.

그들 삶의 무게가 내려앉아 등이 휘어진 종이 한 장.


불안과 맞바꾼 희망을 쥐고 나선 사람들은

새로운 무늬를 짜고 있을까.

그들이 벗어놓은 불안은 진료실 빈 의자에 걸쳐 있다.

봉인하듯 싸매어 폐기물함 깊숙이 밀어 넣는다.


오늘 나는 몇에게 희망을 전했고 몇 명의 가슴에 돌을 얹었을까.

그로서 내 삶의 무늬가 달라졌을까.


새로운 이름이 불리고 다른 삶이 벽을 열고 들어온다.

아린 손끝으로 엮은 내 삶의 무늬도

그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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