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피아노
중학교 1학년때, 음악 선생님의 아들이 반 친구였다.
어느 날 음악 시간에 그 친구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했다.
그 곡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건반 위를 흐르는듯한 손가락이 만들어 내는 선율만큼이나 그의 모습도
멋져 보였다.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잠시 그 당시의 가정 형편으로는 꿈꿀 수 없는 일.
아쉬움을 달래며 훗날 언젠가 배우겠다는 생각만 마음속에 접어두었다.
막상 내가 처음 배운 악기는 피아노가 아니라 해금이라는 국악기였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들은 정수년의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라는 곡.
도대체 어떤 악기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해금이라는 좀 생소한 악기,
이준호라는 작곡가가 설악산의 새벽, 일출을 바라보며 작곡한 곡이라는 설명을 보고 나서 그 소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잠시 해금을 배우다 그만둔 조카에게 연습용 악기를 받고 레슨 선생님을 구해 배우기 시작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해금을 배우는 일이 이토록 쉽지 않을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도 몇 번 했다. 깨끗한 소리를 내는 게 어려웠다.
초보 시절에는 늘 연장을 탓하게 마련이다. 끽끽거리는 소리를 악기 탓으로 돌리고 결국 연주용
해금을 장만했다. 악기 가방을 열던 순간의 설렘, 활을 올려 첫소리를 내던 순간의 두근거림.
그러나 이내 알았다. 여전히 끽끽거리는 소리. 문제는 악기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3년 정도 지나자 소리는 조금씩 나아졌고 농현이라고
하는 현을 떨어 바이브레이션을 내는 연주기법도 흉내를 낼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난해에 큰 아이의 결혼식에서 축연을 했다. 혼자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흔쾌히 허락해 준 레슨 선생님과 함께 한 해금 2중주였다. 레슨선생님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 올린
정도긴 했지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Fly me to the moon] 두곡을 엮어 연주했다.
뉴에이지 곡을 특히 좋아하는 나는, 교사이자 뉴에이지 작곡가인 전수연의 [화풍병]이라는
피아노 연주곡에 맞춰 해금으로 그 곡을 연주해보고 싶었다. 꽃바람을 앓는 병, 상사병을 뜻하는
제목의 곡. 이 곡을 배워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을 때, 기념으로 남겨두고 싶어 영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소원이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10년 전 바이엘 교재를 잠시 손에 댔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었지만, 다시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얼마 전, 레슨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학원에서 하는 가을 연주회에 나가보라고.
남 앞에서 연주하는 경험이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준다는 말에, 망설이다 결국 수락했다.
선택한 곡은 쇼팽의 '이별의 왈츠.'
손가락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같은 부분에서 여전히 나오는 실수.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연주회. 연습실에서의 삐걱거림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무대에 선다는 긴장감을 즐겨보려 한다.
그리고 큰 실수 없이 첫 연주를 잘 마쳐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를 잘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