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Transfer
"그들 각각은 같은 몸을 쓰고 있지만, 신념, 성격, 취향과 기억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출처: 1906년 신경학자 몰턴 프린스가 환자 '크리스틴'에 대해 기록한 실험 일지 중)
크리스틴이라는 해리성 인격장애(다중인격장애) 환자의 상태를 묘사한 구절이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해리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자기로부터 분리해 내는 방어기제다.
어린 시절 겪은 가혹한 폭력, 학대, 공포가 견디기 어려울 때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자아를 통합하지 못한 채 여러 인격으로 분열된 삶을 살게 된다.
응급실도 같은 공간이지만 다중인격처럼 여러 분위기로 모습을 바꾼다. 오늘은 유난히 새롭다.
밤 11시 40분. 술에 취한 남자 하나가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여기 피가 멈추질 않아. 씨x, 얼른 치료해 줘. 씨x!"
거칠게 욕설을 하며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감싼 수건을 휘둘렀다.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깨진 소주병 조각에 손이 베였다고 했다. 손바닥에 깊게 베인 상처는
피하조직까지 열려 있어 봉합이 필요했다.
그의 이름은 김동훈. 서른여덟, 직업은 불분명했고,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다.
손바닥을 감싼 수건은 이미 피로 흥건했고,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누우세요. 마취할 겁니다." 그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냥 꿰매요. 씨x, 마취 따위 필요 없다고."
"그럼 많이 아플 겁니다."
"아픈게 뭐 대수라고. 난 그딴 거 익숙해요"
나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 상처를 확인했다. 길이 약 4센티미터, 꽤 깊은 자상이었다.
마취제를 주입하고 봉합을 시작했다. 마취가 되었음에도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긴장한 듯 이두근을 움찔거렸다. 근육 위로 문신 속 용이 같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용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주인에게 오래도록 길들여진 애완동물 같았다.
바늘이 피부를 관통할 때마다 그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갑자기 전혀 다른 말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선생님, 은지는 주사바늘이 무서워요."
"안 아프게 살살해주세요."
나는 봉합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욕설을 내뱉던 남자의 말투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여린 여자아이의 말투였다.
그는 봉합이 진행되는 동안 묘하게 다소곳했다. 거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자세, 몸짓.
처음엔 거친 욕설을 해대던 전형적인 건달의 말투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지요?"
처음엔 농담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눈에서 갑자기 소녀의 눈빛이 느껴졌다.
봉합이 끝나자 다시 거친 말투를 내뱉었다.
"씨x, 오늘 그 새끼들을 끝장냈어야 하는데."
봉합하는 동안의 일은 기억에 없는 듯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그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최소 두 개의 자아가 있었다.
하나는 폭력과 생존으로 얼룩진 38세 남자 동훈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가 외면하고 싶은 시절의 13세
소녀 은지였다. 이 둘은 서로를 모른 채, 같은 육체 속에서 오랜 세월을 공존해 왔다.
봉합을 마치고 소독을 하던 중, 나는 문득 그의 손목을 잡았다. 요골 위로 두 개의 박동이 번갈아
느껴지는 듯했다. 하나는 굵고 규칙적인 군대식 구령의 같은 리듬, 다른 하나는 가느다란 현악기의 떨림
같았다.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두 개의 생명이 한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환영을 본듯했다.
그날 나는 내가 세운 규칙을 깼다.
나는 지금까지 ‘닥터 트랜스퍼’라 불리는 능력으로 병을 옮겨왔다. 세상에서 악의에 가득한 사람에게
선량한 이의 병을 대신 옮겨 벌을 주는 방식으로. 그것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나름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김동훈은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악인이었다. 악인의 병을 옮기는 건 규칙에 어긋난다.
그렇지만 나는 봉합부위를 소독하며 손목을 잡고 그의 병을 몸에 옮겼다.
김동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은지라는 분열된 존재를 위해서였다. 병을 옮긴다는 행위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신의 흉내이자 동시에 인간의 오만이었다.
나는 그 경계에서 스스로의 윤리를 조율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김동훈을 마주한 순간, 그 균형을
잃었음을 인정한다.
나는 그와 잠시 얘기를 했다. 그는 3살 터울 누이와 10살 때부터 시설에서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아동기
내내 학대와 폭력이 반복됐다. 누이는 시설 입소 후부터 원장의 지속적인 성폭력을 홀로 감당하다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때부터 소녀 은지가 태어난 것 같았다. 현실의 폭력과 상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어린 김동훈의 마음이
자신 속에 ‘은지’라는 보호막을 만든 것이다.
그 후 성인이 되며, 동훈은 더욱 거칠게 세상과 싸우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린 은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숨어들어 순간순간 그의 몸을 대신했다.
또 한 번 신을 흉내 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의 병을 전이해야하지만 타켓이 정해지지 않았다. 악인을 찾아야 했다.
그에게서 병을 없애려면 누군가 대신 그 병을 짊어질 자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타겟을 정했다.
상처 입은 아이를 보듬고 보살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를 준 고아원 원장.
당연히 그에게 가야 할 병이지만 그날 밤, 나는 오래 망설였다.
3일 내에 그 사람을 찾아내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난 꼭 그 사람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도 김동훈은 고아원의 이름과 원장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이 돕는다는 건 이런 때를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았다. 그 고아원은 그 이후로도 확장을 거듭해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큰 재단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의 큰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고 원장은 재단의 회장으로 호위호식하고
있었다.
나이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로 아마 70세는 되었을 텐데 겉모습은 60대 초반 정도로만 보였다.
나는 재단에 기부금을 내기로 하고 회장과 약속을 잡았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한 선행과 그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자립을 했다며 자신의 공을 치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기부금 봉투를 전달하면서
그의 손끝을 스쳤다. 전이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필요한 악수.
며칠 후 봉합부위를 소독하러 온 김동훈과 마주쳤다.
폭력성도 줄고, 정서도 안정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은지의 흔적은 사라진 듯했다.
반면 그 회장은 몸 안에 갇힌 여자아이의 인격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13세 소녀라고 하며 재단 회의 도중 자신을 ‘은지’라고 부르며 울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이후의 일은 관심이 없다. 어차피 남은 생 동안, 분열된 인격으로 파멸의 길을 걸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