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Transfer
사람의 몸은 대체적으로 모든 기관이 유기적, 효율적으로 돌아가지만 어떤 경우에는 총체적 난국처럼
모든 파트에서 동시에 착각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언제나 응급실은 밤이 되야 진짜 얼굴과 특유의 공기를 드러낸다.
낮 동안 억눌려 있던 고통과 절망의 공기가 슬슬 어둠속으로 유출되어 오래동안 익숙해진 나조차도
질식할것같다. 그것은 단순한 기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사연과 울부짖음이 혼합된 실체 없는 환청 같았다.
또 한 명의 환자가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사지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지르는 중년의 남자.
굵직한 손마디와 검게 그을린 피부가 그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노동과 아무 상관없는 지옥같은 고통과 씨름중이었다.
차트에 기록된 진단명—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단순한 신경손상이 아니었다. 뇌가 잘못된 고통을 느끼며, 온몸을 감각의 지옥으로 바꿔버린 증상.
그는 팔을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뇌 혼자만이 아닌 말초신경, 교감신경 전체가 착각으로 만들어낸 과도한 통증 신호가 원인이 되어
특정 부위에 지속적이고 과도한 통증이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이다.
일반적인 상처 회복 과정에서는 통증이 점차 사라지지만, CRPS에서는 말초신경과 교감신경의
과활성화로 인한 통증의 지속, 다시 말하면 몸은 다 나았는데도 말초 신경계가 착각해서 신호를
계속 보내고 뇌가 그걸 받아서 계속 아프다고 해석하는 상태이다.
나는 차트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닥터 트랜스퍼. 그것이 내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 모르게 병을 옮길 수 있는 자.
CRPS는 그 어떤 질병보다 무겁고 잔혹했다. 옮기는 순간, 나는 형벌을 선고하는 자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은 신중해야 한다. ‘이 고통을, 누구에게 옮길 것인가.’
이 고통을 받아 괴로워해도 내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오랜고민 끝에 이름 하나를 골랐다.
내가 싫어하는 세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로 위선적인 사람이다. 특히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사람, 나의편과 남의편에 대한 정의와 죄의 기준이 다른 사람,
그리고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한없이 약해지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내 마음 속 명단의 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가지 특징을
모두 완벽하게 가진 인간이다. 청렴을 가장했지만 뒤로는 뇌물과 착복을 일삼았다.
세상 앞에서는 정의를 떠들면서도 권력을 탐하고 타인을 짓밟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온화한 미소와
말투는 그의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일 뿐 그 속에는 탐욕과 위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타겟은 그이다.
전이 대상이 정치인인 경우는 언제나 쉽다. 그들은 대중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호의적이다. 그리고 난 여러번의 경험으로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표정과 눈빛을
보내는데 익숙하다. 전이 기회는 많다.
한순간의 눈빛과 악수 한번이면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일이다.그와 악수를 했다.
고맙게도 내 악수한 손을 포개 쥐기도 했다. CRPS가 내 몸을 가로질러 그 에게 흘러들어갈거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그와 관련된 뉴스와 모든 매체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한동안 기사를 검색해도 원하는 기사가 없다. 고통스러운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에 왔어야
할시간이 지났는데도. 3일이 지나도 여전히 그는 아프지 않고 일정을 다 소화하고 있었다.
나도 아무 증상이 없으므로 전이 된건 확실하다. 그런데 무슨일일까?
심지어 보름이 지난후부터는 말도 안되게 그에 대한 미담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위선을 알고 있다. 그의 진심을 믿지는 않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훗날 그가 기자회견을 했을때 비로소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전이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엔 예상대로였다. 그는 악행을 시도할때마다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팔에 느꼈다고 했다.
청탁의 댓가로 돈을 받기로 하고 악수를 나누려던 순간 손끝에서 참을수 없는 통증이 솟구쳐 손을 뺐다.
청문회 자리에서 거짓 답변을 생각하던 중에도 같은 통증으로 숨이 막힐정도 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악행을 할때마다 통증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악한 의도를 떠올리기만해도 통증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번은 이전과 같은 패턴의 단순한 질병의 전이가 이니었다.
그의 뇌가 ‘악한 의도’를 품는 순간마다, CRPS의 증상이 발작처럼 엄습하는 조건부 통증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는 처음엔 고통을 참으려고 했다고 한다. 뇌물을 받으려던 순간 손등이 타들듯 아파도, 욕설이
목구멍에서 맴도는 순간 통증이 목을 조여도 그리고 악행을 의도할 때마다 번개처럼 찾아오는 고통을
참아보려 했으니 그럴수록 더 강해지는 통증을 이겨낼수가 없었다고 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선행.
처음엔 계산이었다. '고통만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는 생각했다.
그는 구두쇠 같던 손으로 장학재단에 거금을 내놓았다. 빈민가의 재개발 사업을 멈추고, 노인 요양시설을
지원했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는 지속되었고, 차츰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던 중 그는 뜻밖의 경험을 했다고 했다. 선행을 한 날, 밤에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잔 것이다. 오랫동안
불면에 시달리던 그에게 평온은 낯설고 달콤했다. 다음날 그는 다시 기부를 했다. 그리고 또 다시 편안한
잠을 얻었다. 그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 했던 선행이 자신에게 새로운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고통 회피에서 출발한 행위가, 기쁨을 주는 습관으로 변해갔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웃었다. 이번에는 가짜 미소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 그는
자연스럽게 그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맑았다.
그는 꾸준하게 선행을 이어갔다. 한두 번의 퍼포먼스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지속적이었다.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한때 혐오의 대상이던 그가 진심 어린 눈빛으로 사람들을 도울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진실을 느꼈다.
의심은 남았으나 점점 옅어졌다.
"고통은 아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 한, 고통은 나를
건드리지 않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겠지요. 이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짐승이었을 테니."
그의 말은 고백 같았으나, 내 귀에는 묵직한 판결처럼 들렸다.
나는 응급실로 돌아왔다. 또 다른 환자가 비명을 지르며 실려왔다.
질병의 전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형벌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의 구원자이며, 누구의 집행자인가. 응급실의 밖 도심의 야경이 복잡하게 어질거렸다.
전이의 양상이 진화하듯이 바뀐 이유를 생각하는 내 머리속은 더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