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4

전화 - 마종기

by 짧아진 텔로미어

전화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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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전화를 건다'는 평범한 행위에 특별을 부여한다.

시인은 이미 상대의 부재를 알면서도 전화를 거는 역설적인 구절을 시작으로

그리움의 감정을 묘하게 아련하게 만든다.

수화기 너머 울리는 통화음이 곧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부재의 상황'을 오히려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부럽다.

시의 발표 시점을 생각하면, 집 전화의 벨소리였을 텐데

온 집을 울리는 그 벨소리가 소리 없는 규처럼 느껴지고

마치 내가 부재의 외로움과 슬픔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방에 들어섰을때 누군가 보낸 안부가 내게 쏟아져 내리는 상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