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Transfer
닥터 트랜스퍼 제12화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및 사건은 허구이며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필명이 같은 분들은
이번에도 우연임을 알려드립니다. 수험생 그리고 수험생을 둔 학부모 작가님 모두 고생했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모든 작가님들의 자녀분들께 찍기 실력을 전이했습니다.
실력 플러스 행운이 이~~~~~~~~~~~~~~~~~~~~만큼 있을 겁니다.
응급실의 공기는 습기로 무거웠다. 그 무게는 바깥의 날씨보다 항상 먼저 응급실에 도착해
아직 비가 오지 않은 바깥 날씨와 수담(手談)하는 듯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의 냄새는 공기 중에 얇은 막을 덧씌운듯했고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음이
습기를 머금어 둔탁해진 듯했다. 나는 얼음이 녹아 옅어진 커피를 깊게 들이키며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했다. 카트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구급대원의 신발이 대리석 바닥을 빠르게 밟고 가는 소리
그리고 센서에 감지된 움직임으로 인해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
이 소리들이 섞여 불협화음을 만들면 그것은 곧 전이의 규칙을 실행할 시간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들것 위에 실려 들어온 이는 스물여섯의 남자였다.
"나이 스물여섯, 오토바이로 배달 중 빗길에 미끄러짐. 복부 통증 심함, 혈압 88에 62, 맥박 132.
의식은 명료."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상황을 알렸다.
나는 지체 없이 환자의 젖은 허리 아래에 손을 넣어 자세를 안정시키고, 그 즉시 복부 촉진을 시작했다.
배의 왼쪽 위쪽 사분면을 누르자, 심한 통증으로 몸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심한 반발통이다.
"왼쪽 어깨도 아파요" 고통에 찡그리며 한 그 말은, 복강 내 출혈로 횡격막이 자극되어 생기는 케르
징후(Kehr's sign)를 의심해야 했다. 비장 파열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수액 2L, 복부초음파준비, O형 응급 혈액 요청. 복부 CT 대기. 진통제 바로 주세요."
내 오더대로 진행되었고 복강 내 출혈 확인을 위해 복부 초음파가 준비되었다.
프로브를 환자의 배에 대자 초음파 화면이 검은 호수처럼 보였다. 출혈로 인해 복강 내에 고인 피.
그 호수는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비장 파열.
비장은 갈비뼈 안쪽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면역세포를 조절하고 낡은 적혈구를 파괴하는, 혈관이 매우
풍부한 장기이기에 파열은 짧은 시간 안에 대량 출혈을 야기한다.
혈압이 안정화되기를 기다리며, 나는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대학생이었고 학비 마련을 위해 빗길에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겨우 숨을 고르면서도 가장 먼저 "저… 일은… 언제… 다시…."라고 물었다.
그의 불안한 눈빛 속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지금은 그 걱정 말고 치료만 신경 씁시다"라고 말하며 나에게 병을 옮기는 전이의 규칙을 실행했다.
이제 타깃을 정해 이 질병을 옮겨야 했다.
대상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가장 비열한 행동을 한 자.
D-3일이 시작되었다. 타깃은 곧장 떠올랐다. 지역개발위원장이며 차기 공천이 유력한
이름만으로도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 박수호. 그는 반반한 얼굴덕에 인기몰이를 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가면에 숨긴 내면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머리가 빈 추종자들.
그는 몇 해 동안 '도시 재창조'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짓고 부수는 일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차액이 그의 차명 계좌로 흘러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날 밤, 박수호가 호텔 연회장에서 출정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화면 속 그는 언제나처럼 확신에 찬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자가 민감한 질문을 던지면 반쯤만 듣고
말을 끊고 답했다. "국민을 위한 결정을, 국민과 함께." 그의 입에서 '국민'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구역감이 치밀었다. 그가 서 있어야 할 곳은 화려한 연단이 아니라, 피로 얼룩진 들것이었다.
아쉽게도 그날은 응급실 당직이어서 전이를 시도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 그의 동선은 사진전과 기자회견장으로 공개되었다. 전이는 오늘이다.
오전 행사장의 로비는 플래시 세례와 카메라들로 가득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쫓았다. 경호원들은 쉴 새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며 좌우를 경계했고, 플래시 불빛이
터질 때마다 순간적인 명암의 대비가 시야를 방해했다.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 완벽하게 재단된 회색 정장, 스테이지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눈빛.
나는 그의 동선을 따라 기자들이 만든 반원을 뚫고 안으로 진입했다. 손을 뻗으면 그의 손등에 닿을 수
있는 위치. 지금이다.
손을 뻗는 그 짧은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강하게 밀어냈다.
"죄송합니다, 뒤로."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가 내 앞을 지나쳐 갔다.
내가 그 힘에 밀려 한 발짝 물러선 바로 그 찰나, 박수호는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어 다른 사람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냉방이 되어 공기는 서늘하게 느껴졌지만
몸안은 화끈거렸다. 서두를 것 없다. 아직 전이할 시간은 많다.
초조함은 항상 일을 망치는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호텔 바깥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식지 않는 몸속의 열기를 달랬다.
그 다음 날, 그는 재단 후원의 밤을 주최했다.
밀폐된 공간, 격식차린 복장, 제한된 인원.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한 손에 잔을 들고, 그가 등장할 동선을 읽으며 대기했다. 박수소리가 귀청을 때릴 듯
울려 퍼지는 동안, 그는 VIP들과 인사를 나누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그가 내 쪽으로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눈앞 20센티미터. 전이의 순간이다.
바로 그때, 그의 보좌관이 다급히 그의 귓가에 몸을 숙여 무언가를 속삭였다.
보좌관의 찰나의 귓속말에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내 손에 들린 잔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내가 전이를 위해 손을 뻗는 사이에 그는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해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내게는 아직 증상이 없으나 상상만으로도 배가 묵직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고
왼쪽 어깨에 통증이 방사되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단순한 심리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속으로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몸이 거짓말을 믿고 실제 증상을 만들어낼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날 아침. 비장 파열 환자는 다행히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 사실은 내게 더 큰 절박함을
안겨주었다. 오늘이 아니면 끝이다. 새벽에 처리했던 심근경색 환자도, 음주 추돌사고로 턱이 찢긴
청년도 모두 잘 버텨주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 휴가를 냈다.
박수호의 일정은 오전 시장 방문, 오후 지역 대학 특강, 저녁 자원봉사자 간담회. 오전 시장 방문이 최고의
기회였다. 군중은 방패이면서 동시에 틈이었다.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손에는 의미 없는 전단지를 하나 들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내 어깨를 밀쳤다. 악수를 원하는 수많은 손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올랐다.
나도 손을 들었다. 그가 다가왔다. 2미터. 1미터 앞에서 그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20센티미터 앞. 손을 뻗는 그 결정적인 순간, 봉사자 조끼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내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줄! 줄을 지키셔야죠!"
나는 반사적으로 솟아오르는 욕을 삼켰다.(그 순간 봄O님 빙의 ㅆㅂㄹ)
내 손은 공중에서 허망하게 방향을 잃었고, 그는 이미 다른 사람과 손을 맞대고 있었다.
알람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패의 횟수가 쌓일수록 초침은 더 빠르고 크게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좁은 골목으로 나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가 바람에 날려 내 발밑에 떨어졌다. 아직 시간은 있지만 오전 휴가 시간은 곧
끝난다.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 핑계를 대고 오후까지 휴가를 연장했다.
오후 지역 대학. 강연장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박수는 그들처럼 젊고 힘이 넘쳤다.
나는 뒤쪽 출입문 근처에 섰지만, 강연이 끝난 후 그는 활기 넘치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버렸다.
젊음의 기운에 밀린 나는 좀처럼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네 번째 실패. 시간은 이제 한 시간 남짓.
배가 묵직하게 부풀어 오는 듯한 환상통이 왼쪽 어깨까지 방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이 무게가 진짜가 아니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거짓말을 믿기 시작한다.
저녁 지역 간담회. 소규모였지만, 접촉의 기회는 번번이 벽에 막혔다.
사진 촬영 줄 앞에서는 진행요원이 단호하게 "인원 제한입니다"라고 막아섰다.
문 옆에서는 보좌진이 손짓했다. "대표님, 저쪽으로 가시죠." 나에게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
다섯, 여섯, 일곱 번째 실패. 실패의 숫자가 쌓일 때마다 초침 소리는 귀에 더 선명하고
잔혹하게 들려왔다. 남은 시간 27분.
시간이 10여분 남았을 때, 그는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복도의 모서리에 매복했다.
보좌관 둘, 경호원 하나, 사진 담당 한 명. 틈은 보통 경계가 느슨해지는 대화의 순간에 생긴다.
보좌관이 휴대폰을 쳐다보고, 경호원이 고개를 돌리는 그 1초.
나는 그들의 틈 대신, 화장실 문고리를 택했다.
복도 끝 화장실 문을 내가 먼저 잡고 열고, 그가 손을 뻗는 순간 내 손등과 그의 손등이 스칠 것이다.
스침은 짧지만, 내가 원한다면 충분했다.
그가 다가왔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그보다 먼저 보좌관이 들어오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대표님, 긴급 통화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방향을 바꿔 휴대폰을 받았다. 문고리에 닿으려던 나의 손은 허공을 그렸다. 여덟 번째 실패.
남은 시간 5분. 이제 기회가 아니라 절박한 추격이었다.
내 배는 점점 더 묵직하게 불러오고, 통증이 왼쪽 어깨까지 방사되는 느낌은 거의 실제 같았다.
아직이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그가 로비로 내려왔다.
간담회는 끝났고, 셔틀 차량이 바깥에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재빨리 계단으로 내려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바깥의 공기는 습기와 긴장감으로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몇 명과 악수를 했다. 보좌관이 셔틀의 문을 열었다.
그는 승차하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남은 시간 01분 32초.
나는 뛰었다. 제지당하지 않게 가장 빠른 보폭의 전력질주를 했다.
마이크를 정리하던 스태프가 뒤로 물러서며 내 어깨와 부딪쳤다. 몸이 미끄러졌다.
남은 시간 01분 12초.
"죄송합니다" 말하는 그를 볼 틈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가 셔틀버스에 올라섰다. 왼발, 오른발. 문 옆 손잡이를 잡았다.
전이에 실패하는 바로 그 순간.
버스에 올라타던 그가 뒤를 보며 손을 흔들다 발을 헛디디고 앞으로 휘청거리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인 반사 작용. 나는 망설임 없이 튀어나가 앞으로 넘어지는 그의 몸을 내 몸으로 지탱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내게 말했다. 내 손을 잡고.
타이머가 멈추었다. 남은 시간 59초.
속으로 나는 속삭였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큰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그는 셔틀차량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이 축축하게 식으며 한기가 느껴졌다.
병원으로 돌아오자, 야간팀이 컨퍼런스 룸에서 케이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비장 파열 환자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고 다음 날이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가는 휴대폰을 충전하고 뉴스를 검색했다.
"박수호 위원장, 행사 후 복통 호소… 응급 이송. 복강 내 출혈 의심."
그 증상을 일으키기 위해 벌어진 여러 일들을 그 건조한 문장 안에 담을 순 없다.
나는 화면을 끄고 잠시 눈을 감았다. 8번의 실패 후 전이. 남은 시간 00:00:59.
그제야 극심한 허기가 밀려왔다.
새벽 세 시, 배송원 청년의 병실을 한 번 더 돌았다. 그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손등에 꽂힌 정맥 라인이 가지런했다. 침상 발치에 놓인 빈자루옆에는 피 묻은 낡은 운동화가 있었다.
복도를 나오는데, TV 밑으로 자막이 흘렀다.
"박수호 위원장, 갑작스러운 비장 파열로 인한 복강 내 출혈로 수술… 생명 지장 없어."
밤이 깊어지자, 장마 전의 바람이 병원 주위를 휘돌았다.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가로수는 초록열정을 품은 짙은 색이었다. 창문 앞에 서서 바깥을 응시했다.
오늘의 운명은 내 손을 들어줬지만 다음번엔 어떻게 될까.
침대에 눕자, 천장 위에 사각형의 빛들이 다시 겹쳐졌다. 나는 눈을 감고, 셔틀 문이 닫히기 직전
그 짧은 시간을 떠올렸다.
전이는 언제나 몇 초 안에 일어나고 오늘의 그 몇 초를 위해 71시간 59분을 썼다.
나는 그 순간을 여러 번 떠올리다 잠들었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았지만 병원은 벌써 비의 냄새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