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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님들에게

by 짧아진 텔로미어

글벗님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낯설은 사람 품에 얼싸 안겨...(텔로미어 정신차렷!!!)

그렇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심지어 성별도.

그런 특이한 인연들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것이 6월 24일. 곧 다섯 달이 되어가는 시간이 흘렀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손끝으로 작성되어 건네지는 몇 줄의 글뿐인데

그 몇 줄이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필명으로는 성별조차 짐작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담담히 풀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삶의 내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전해오는 감정은 나이, 성별 그리고 지위등에 따라 다르지 않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서

말보다 글에 더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안에서도 잠시 스쳐 지나가듯 짧은 인연들도 있다.

한두 번의 글만 나누고 조용히 떠나간 사람들.

몇 줄의 대화만 나누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느낌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직접 마주 앉아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지만, 글자 사이의 행간까지 느껴져

서로의 삶에 조용히 손을 얹어주는 위로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기이한 친밀함이 이 공간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독서량이 아주 적은 사람이고 인문학적 깊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문학서적을 멀리해 이과적인 사고에 익숙한 두뇌 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 일이 늘 어렵고, 글에 많은 것을 녹여내며

셰련되고 깊이 있게 글을 쓰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감동과 위로를 느끼고 그리고 약간의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그 능력 뺏어오고 싶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고, 잠시 멈춰 ‘좋아요’를 눌러주고

때로는 마음을 나누듯 댓글을 남겨주는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도 멈춰서 한 줄이라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글을 매개체로 서로에게 잠시 머물러주는

이 풍경이 때로는 삶의 다른 어떤 관계보다 따뜻할 수 있음을

그래서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의 온도가 더 따뜻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래된 종이책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는 글로 이어진 이 인연들이 진정성을 지닌 이유다.

이름 없이 스쳐 가는 관계라도, 글 속에서만 만나는 친구라도, 이 시간이 앞으로도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기를 래본다.


그리고 그런 글벗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같이 동행할 새로운 글벗님들께도 미리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진: Unsplash의 Aaron 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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