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다 슌지. 10호실로!"
타케다 슌지는 서대문 형무소 10호실로 수감되었다.
마찰음을 내며 철창문이 닫힐 때마다 그 소리는 생각보다 날카롭지 않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두려움이나 분노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문이 닫히는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세상 전체가 자신의 뒤로 한 발짝 물러선 것처럼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감옥 안은 생각보다 좁았고, 좁다는 인식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졌다.
매일 벽과 벽이 서로 다가와 거리가 없어지는 듯했다.
축축한 벽에서 스며 나오는 매퀘한 냄새와 바닥에 깔린 얇은 짚자리의 거친 감촉이
서로 뒤섞여 그의 피부에 달라붙을 때마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를 버틴다는 것이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문제가 아니라
감각 하나하나를 조금씩 포기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낮과 밤은 종소리로만 구분되었고 창이라 부르기에도 지나치게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늘 창살의 격자에 걸려 바닥까지 닿지 못한 채 중간에서 부서졌다.
그 부서진 빛 조각들을 바라보며 슌지는 지금이 아침인지 아니면
이미 밤이 여러 번 지나간 뒤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오직 몸속에 쌓여 가는 피로와 통증 그리고 그리움의 순서만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타케다 슌지. 나와. 조사실로 간다"
고문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고, 질문은 늘 같았다.
"달빛의 행방은?"
"왜 명령을 거부하고 도주시켰나?"
그가 대답하지 않거나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점점 목적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매번 새롭게 무너질 준비를 해야 했고,
의식이 흐려질수록 그는 윤서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고통이 끝내 그 이름을 지워 버리게
두지는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윤서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서당 마당에서 옷을 널던 손가락과 바람에 흔들리던 옷자락과,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을 때 전해졌던 체온까지,
고문으로 흐트러진 의식 속에서도 정확한 순서로 떠올랐고, 그는 그 기억들이야말로
이곳에서 자신을 사람으로 붙잡아 주는 유일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더 자주 떠올리려고 했다.
밤이 되면 감방은 더욱 좁게 느껴졌고,
눈을 감으면 기억들이 사라질까 봐 차라리 눈을 뜨고 벽을 바라보는 편을 택했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벽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벽이 아니라 커다란 종이처럼
느껴져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돌조각을 찾아 벽에 글을 새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윤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져
하루에 몇 글자씩 문장을 새겼고,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배어 나와도 그 문장이 완성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아 멈출 수 없었다.
담장 위에 뜬 달빛을
강물에 띄웠습니다
그 구절을 새긴 후 그는 잠시 벽에 이마를 기댄 채 서 있었고,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벽을 넘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고
느꼈다. 며칠 뒤, 그는 그 아래에 또 다른 문장을 덧붙였고,
글씨는 점점 흐려졌지만 의미는 오히려 또렷해졌는데, 그 문장 끝에 윤서의 이름을
남겼고, 이름을 새기는 순간 등뒤에서 그를 부르는 윤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일본 송환을 위해 끌려 나가던 날, 그는 마지막으로 감방을 돌아보며
자신이 남긴 구절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담장 위에 뜬 달빛을
강물에 띄웠습니다
어느 하늘 어느 구비구비 돌아
이 창가에 닿을까요
눈을 감으면 사라질까 봐
눈 뜬 채로 건넌 밤마다
아직 식지 않은 그대의 온기가
매화향처럼 가득합니다
그것들이 언젠가 윤서에게 읽힐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속으로 조용히 소리쳤다.
"반드시 살아남아 달라고, 그리고 이 벽을 보아 달라고, "
구름에 가려 달빛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어딘가를 비추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다음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