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생각 하나
"내가 거기와 무슨 관계가 있어, 안 그래? 그리고 그 업체는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니야. 나한테 추가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거라고. 그런데 아까 회의에서 꼭 나보고 무슨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또 뭐냐?"
함께 회의를 마치고 온 선배가 불만을 토로한다. 타 부서의 요청으로 소싱 검토에 후보 업체를 추가하였는데, 그 부분에 대해 회의에서 마치 이 선배가 업체를 자의로 후보에 추가한 것처럼 얘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말이었다. 선배를 놀리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가벼운 농담 정도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배에겐 생각할수록 열을 받치게 만들었다.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야기를 한 분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본다. 점점 감정은 격해지고 어느새 상종치 못할 원수가 되어 버린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다 받으면 어떻게 될까? 하루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한 번 적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고 더러운 것들이 그곳에 가득 적힐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인성과 지성으로 가리고 누를 수는 있어도,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온다. 바삐 일을 할 때는 모르지만 보통은 이 졸음을 떨쳐 내기가 참 어렵다. 그럴 때면 부서에 비치된 6.5 온스 종이컵에 카누를 타고 비스코프 비스킷 몇 조각을 찍어 먹는다. 뜨거운 커피를 빨아들이며 눅눅해진 비스킷은 졸음을 몰아낼 뿐만 아니라 기운도 북돋아 준다. 종이컵 커피와의 조합이 기가 막힌다.
선배와 커피를 마시며 선배의 마음을 살펴본다. 회의에서 들은 그 말 자체가 화가 나게 한다기보다는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힘들게 하는 것을 본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쉽게 떨쳐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생각의 늪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늪에 빠진 사람은 발버둥 칠수록 더 빠지게 된다.
일을 하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흐르면 그 사람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갖다 대지 않는다. 실수를 하더라도, 잘못을 하더라도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나아가 실수도 많이 줄어든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마음도 같다. 나를 높여 놓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기 어렵다. 마음을 낮추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쉽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떤 일보다도 어렵다. 만약 내 생각을 꺾고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다면, 내 마음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팔은 꺾일 때 자유롭다. 꺾이지 않는 팔은 많은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을 야기한다.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마음이 굳어져 누구의 말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느 날 내게 보인다면 생각을 해야 한다. 뜨거운 커피에 녹아들어 달콤함을 주는 비스킷처럼,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주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