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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Aug 19. 2022

협력사 공장 화재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

협력사 공장 화재

2015년 여름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했는데 급하게 연락이 하나 왔다. 평택에 있는 Tier 2 협력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팀장님께도 연락이 갔었다.


바이어가 챙겨야 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공장 라인이 멈추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파트 하나만 없어도 차량 생산을 할 수 없고 라인을 멈춰야 된다. 당시 UPH (Unit per Hour, 시간당 차량 생산 수량)가 6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1분에 1대가 만들어지는데 라인이 멈추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팀장님과 연락하여 당장 협력사 공장에 가야 할지 고민했다. 어느 만큼 화재가 심각하게 발생했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파트 공급이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했다. (이런 긴급한 경우에 바이어가 가지 않으면 협력사에서는 후 순위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협력사에서 계약하여 파트를 공급하는 거래처가 여러 곳이고, 급하게 연락이 오는 곳부터 먼저 파트를 준비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화재 진압이 완료됐는지도 불명확하고 당장 현장 진입이 가능한지도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Tier 1 협력사를 통해 상황을 들었다. 새벽에 화재가 발행한 후 8시간에 걸쳐 진압 작업이 이루어졌다. 인근 우레탄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행히 새벽에 발생해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만 1개 동이 피해를 입어 라인 및 설비가 전소 (全燒)되었다. 

불에 휩싸여 전소되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Tier 1 담당자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였다.  Tier 2는 우리와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기에 Tier 1 협력사와 함께 대책 마련을 의논하였다. 우선 단기 대책으로 잔여 설비를 활용하여 생산을 재개하고 출하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중장기 대책으로 Tier 2에서 생산 중인 모듈 라인을 Tier 1으로 내재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차종에 따른 판매 계획 수량과 현재 보유한 재고 수, 그에 따른 부족분을 파악하고 대책안에 따른 월별 수량을 검토했다. 라인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약 5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3일간 협력사 공장을 방문하여 재고 파악을 하고 대책 수립을 계속 의논하였다. 다른 라인을 이용하여 파트를 생산하기에 신뢰성 테스트도 필요하였다. 매우 바쁜 일정으로 Tier 1, Tier 2 협력사 담당자분들과 함께 최선의 대책을 수립하였다.

차종별 생산 계획을 점검해 보았다.


외적 요소

아무리 재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생산 설비를 꼼꼼히 점검한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외부의 힘에 의해 긴급한 상황을 맞는 경우가 있다. (인근의 우레탄 공장에서 새벽에 왜 화재가 발생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긴급 사태가 발생했다. COVID19의 영향으로 협력사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회사의 그룹도 라인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리고 IC Chip (Integrated Circuit Chip, 집적 회로 칩) 수급 부족으로 인해서도 차량 생산이 멈추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싼 비용을 들여 해상 운송이 아닌 항공 운송을 통해 파트를 긴급하게 수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브로커를 통해 기존 공급가보다 훨씬 비싼 비용으로 부품을 구매하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도 이어졌다. 구리는 KG당 만원을 넘어서고, 알루미늄 및 납 등 여러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와 환율까지 급등하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던 파트는 다른 사이트로 이전을 해야 했고, 이 두 나라로 차량 수출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려움에 대한 대처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을 때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는지이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해 온 후, 사울 왕과 전쟁을 치르러 나가려 할 때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머물고 있던 시글락 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성을 쳐서 불사르고,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었다. 울 기력이 없도록 슬피 울다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 하는 아주 긴급한 상황이 생겼다. 이때 다윗은 자신이 바라보는 형편대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라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는다. 어디로 갈지도 몰랐지만 결국 잃어버린 사람과 재산을 모두 되찾고, 더불어 탈취물을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게 된다. 이 일 후에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된다.


일에서나 삶에서나 원하지 않는 여러 어려움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너무 힘들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이때 내가 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만났었다. 그중의 하나는 '5.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유는'에서 적은 것처럼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큰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일들이 그냥 어려움으로만 남지 않고 나를 성장시켜준 일로, 그리고 감사한 일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요즘 로빈슨 크루소 책을 읽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항해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 바다로 나서게 되고, 그 후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로 지내기도 하고, 자신이 살던 영국이 아닌 브라질에서 터를 잡아가며 살아가다 다시 바닷길을 나서고 그러면서 무인도에 혼자 표류하여 28년간 지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일을 만나면서 큰 상실감과 후회, 실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면서 희망과 감사함을 가집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삶이 너무 어렵다면, 그리고 혹시 다르게 생각할 만한 힘조차 없다면 다른 시각 (視角)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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