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협력사에서 단가 인상이 필요함을 통보해 왔습니다. 신규 프로젝트에 기존 파트를 Carryover 하는 컨셉인데 (설계 변경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 단가 인상이 통보되어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단가 인상에 대한 사유는 소비자 물가 지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영업 이익률이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파트 단가 인상 요청이 +10%에 달할 만큼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우선 해당 협력사와 네고할 포인트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표면적으론 단가 +10%를 수용해야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협력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습니다.단가 인상 없이 말이지요. 예를 들면 약정된 단가 인하가 있는데, 인하 금액을 줄이거나 적용 시점을 늦추는 것입니다. 단가 인상의 근본적인 목적은 영업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신규 프로젝트에 지불할 개발비나 금형비를 조금 높여 재무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옵션들은 합리적인 논리를 갖고 있어야겠지요.)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협력사를 변경하는 것이지요.
우선 해당 협력사를 불러 단가 인상을 요청한 사유를 들어보았습니다. (단가와 관련된 부분은 전화나 메일 외에 직접 만나서 협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야기 드리기 어렵지만 도저히 인상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네, 우선 보내주신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에 따른 제조 단가 인상이 금액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는 거죠?"
"네, 최소한 적자를 면하려면 10%는 인상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10%는 한 번에 올리기 쉽지 않은 금액인데요... 10%를 인상해야만 손익분기점을 면한다는 자세한 내역을 알 수 있을까요?"
"내역이라면 어떤 것을...?"
"우선 주요 항목이 인건비라고 하셨는데, 파트 단가에 녹아 있는 현재 인건비와 변동될 비용을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겠어요."
"네, 그럼 자료 정리해서 보내 드릴게요."
단가 구조를 오픈하는 것은 협력사의 방침에 달려 있습니다.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지요. 다만 +10%를 제대로 확인된 근거 없이 반영할 수도 없기에 협력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요청한 자료가 회신되었는데, 전혀 앞뒤를 파악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인상 요청 금액을 분석함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사실 여러 협력사에서 단가 구조를 회신하지만 있는 그대로 그 정보들을 믿지는 않습니다. 마진을 3%로 적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러하다고 온전히 믿기에는 불완전한 요소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는 마진이 6%인데 3%로 표현해 두고, 나머지 3%를 다른 비용에 티가 나지 않게 묻어둘 수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단가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어려워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가 있음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이럴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게 '말꼬리 잡기'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게 무슨 말이냐 싶을 수 있지만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에선 상당히 유용한 네고 툴이 됩니다.
"조금 더 단가를 최적화할 수 있는 방안이 혹 있을까요?"
"저희도 가장 경쟁력 있게 제출해서 더 이상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네요."
"그러면 SNP (Standard Number of Parts, 화물에 적재하는 팔레트 단위의 최소 파트 수량)를 조절해 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4단으로 적재하게 되면 지게차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체크해 봐야 되고, 공장에서도 적재 공간이 되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파트 한 개의 무게를 감안했을 때 4단까지 적재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대신 공장에서 적재 공간이 되는지는 확인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창고 운용비를 매년 4%씩 인상하는 것을 감안해서 보내 주셨던데요."
"네, 맞습니다."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신 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매년 +4%는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사실 거기에는 물가 인상률도 포함되어 있지만 '계약 대비 프로젝트 볼륨이 줄어들 수도 있음'을 감안해서 조금 룸을 넣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볼륨은 늘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때는 단가를 더 낮출 수 있음을 뜻하는 걸까요?"
"아, 그 부분은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네, 그러면 SNP 조절과 더불어 창고 운용비도 재 검토 하신 후 답변 부탁 드릴게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어떤 실마리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발견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협력사 분들과 미팅을 할 때 대화의 앞뒤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사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일의 '진실성' 보다는 '진실하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을 봅니다. 진실되게 말하는데, 정보가 부족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 의문을 품게 만든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반복된 의심은 모든 것을 꼬아 보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일이 의심 투성이로 비칠 수 있지요...) 반대로 약간의 불확실함과 거짓이 섞여 있지만 논리 정연하게 말한다면 문제없이 일이 통과됩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말꼬리를 많이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머리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각자의 위치에 맞추어 논리 정연하게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기에 '정보'가 부족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저 같은 경우엔 제 주관과 예상을 조금 섞어 보고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해하지 못한 자료를 상위 보고자에게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은 일을 떠넘기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대놓고 반항하는 것이든가요...)
보통은 "~일 것 같습니다" 같은 표현은 좋지 않습니다. 일 것 같다? 이러면 보고를 받는 입장에선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애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잘 모른다고 그대로 보고를 해야 한다면 현재 갖고 있는 정보가 불확실함이 많음을 먼저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