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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그린 Apr 25. 2024

운명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 3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2화 (철학을 담은 드라마)



*소녀 신: 알고 있어? 정원이 사라지면....


*멸망: 정원사도 나비도 필요 없어지겠지.


*멸망: 왜, 나야!


*소녀 신: 운명....?


*멸망: 가혹하네.


*소녀 신: 운명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







*멸망: 미리 알았다면 뭐가 달랐을까? 아닐걸.


*동경: 나 가지고 장난하니까 재밌어! 왜, 나야!


*멸망: 운명... 운명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


*멸망: 그러니까 네 편 아니라고 했잖아 아까.

네가 선택한 거야. 물론 난 네 선택을 언제나 존중하고.









삶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불행한 일들, 멸망의 상황들 앞에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억울하고 화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흔 중반이 넘어서니 조금은 것 같다.


불행한 일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우리가 불행이라는 부르는 멸망들은 각자 받아들이는 크기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넘어갈 만큼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무겁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불행을 마주할 때 누군가는 겸허히 받아들여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반면 나의 의지로 선택했던 일이 멸망의 결과로 이어졌을 때 누군가는 외부의 탓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운명은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했다' 

그리고 '멸망의 손을 잡고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너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각자의 삶에는 기본 줄기가 되는 운명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철학자 '니체'는 운명애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라 했다.

각자 운명의 큰 줄기에서 크고 작은 멸망을 마주할 때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지에 따라 작은 가지들이 뻣어나가고 잎과 꽃, 열매까지 맺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종종 삶을 돌아보면 그 멸망의 상황들이 나의 인생 속 꽃과 열매를 맺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었는지 알아채는 날들이 있다.


삶은 영원히 굴러가는 수레바퀴와 같아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한다고 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를 잘 보내면 우리의 미래는 과거보다 나은 삶이 될 것이라고 했다.

비록 현 생이 아닐지라도, 현 세계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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