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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Sep 10. 2023

덕분네와 덕택 군

"선생님, 저 김장했어요."

함께 책을 읽는 멤버인 덕분네가 종이 가방을 내민다. 비닐봉지 두 개가 얌전히 담겨 있다. 그릇에 옮겨 담으려고 봉지를 드는 순간 슬그머니 웃는다. 매듭을 느슨하게 묶은 김치 봉지를 보며 혼잣말한다. '덕분네는 배려하는 여인이다.'


내 어머니는 늘 음식을 꾹꾹 눌러 담는다. 반찬물이 넘은 반찬통을 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비닐에 담을 때는 꽁꽁 묶는다. 쉽게 풀리지 않으면 나는 약이 오른다. 이제는 처음부터 가위로 묶인 부분을 자르지만 가위를 씻기도 번거롭다. 조금만 덜 담으라고 애원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이다. 여전히 봉지는 야물게 묶고 반찬통에는 꾹꾹 눌러 담는다. 반찬물을 흘리는 엄마표 음식들이 나에게 푸대접받는다.


페트병의 라벨, 택배물의 전표, 포장상자의 테이프를 떼면서 붙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이면 떼어내기가 힘들다. 떼기 쉽게 한쪽 귀를 살짝 들어둔 상품도 있다. 0.1%의 허용은 하자가 아니고 배려이다.


'당신 덕분에 삽니다'라는 아내를 남편이 '덕분네'라고 부르고 '당신 덕택에 삽니다'라는 남편 아내가 '덕택 군'이라 부르는 부부를 본다. 덕분네가 덕택 군과 갈등 중이라고 가끔 말한다. 우리 회원들은 그 부부가 왜 갈등하는지 궁금해하다가 여느 부부와 다르지 않아서 웃는다. 덕분네와 덕택 군은 분명 갈등을 풀 여지는 서로가 남겨둔다고 믿는다.


사람 관계에 배려가 필요하다. 봉지의 매듭은 싹둑 자르지만 인간관계는 간단하게 자르지 못한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풀 여지를 남겨 두는 사람은 아름답다. 갈등을 풀어낼 한 가닥은 어디에라도 남겨 두어야 한다. 큰 갈등도 사소한 갈등도 각자가 풀 여지를 남겨야 한다. 비닐봉지를 느슨하게 매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집단에 대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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