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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며느리가 잽싸게

첫 장면에 눈이 번쩍 뜨인다. 게이 커플이 말다툼한다. 동네 극장 '레인보우 시네마' 창업주인 할아버지, 재개발로 마지막 상영을 앞둔 극장 창업주 2대인 아버지, 동성애자인 창업주 3대 아들, 치매 노모에게 매 맞는 딸 중년 여인, 따돌림으로 자살한 학생의 친구들이 말한다.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적극적으로 도우지 못한 청년이 울며 고백한다, '나도 당할까 봐.' 따돌림당하던 동생이 세상을 버렸을 때 집을 떠나 버린 형,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침에  들어주지 않은 아버지, 손자가 돈을 훔친 날 물어보지 않은 할아버지가 묻어둔 죄책감을 고백한다.

'나도 당할까 봐.'라며 청년이 흐느끼자 뒷자리에서 훌쩍거린다. 막이 오르기 전까지 소곤대던 젊은 여성들이다. 할아버지가 고백하실 때 옆자리 청년 손이 얼굴로 간다. 나도 눈시울이 뜨뜻해진다. 손수건을 꺼내기 전에 눈물이 흐른다. 담담한데 알싸하다.

신구 선생의 <두 교황>을 못 봐서 아쉽다했더니 며느리가 잽싸게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를 예매한다. 첫째 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신구 선생의 울림을 제대로 본다. 100분 공연을 보며 돌아본다. 내가 보이는 것만 보고 살고 있는가. 소수의 문제라도 알고는 살아야지. 해결할 수 없어도 잊지는 말아야지. 며느리가 무지개를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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