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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연산 자드락길은 수수하다. 11개 폭포가 반기는 등산길보다 소박하다. 보경사 정문에서 고은사까지 2km 길에서 양봉통도 보고 모종하는 농부도 만난다. 수필 같은 숲길이다.


작년 7월 고은사 가는 자드락길을 걷다가 팥 모종하는 아낙에게 말했다.

"동지 전에 팥 팔러 올게요."

가을에 팥 팔러 오겠다던 할멈이 오지 않아 괘씸했을까? 올해 그 아낙의 밭에는 옥수수가 불그레한 수염을 내밀고 있다.


자드락길을 내려와서 보경사 경내로 들어간다. 매표소는 닫혀 있고 검표원은 없다. 표를 팔던 다람쥐 집을 치운 풍경을 그려본다. 일주문 한가운데서 버티는 보시함도 치운다. 돈이 보이는 투명한 통까지 치우니 깔끔하다. 바라 소리가 챙챙한다. 대웅전에서 49재를 지낸다. 비구니께서 바라춤을 춘다. 흔치 않은 춤을 보다니! 카메라를 켜면서 잠시 멈칫한다. 찍어도 되나?


길에서 엄숙한 사람도 보고 건강한 사람도 만난다. 그들의 생업과 종교의식은 내 밋밋한 일상에 악센트를 준다. 악센트는 밋밋한 삶의 활력소이다. 생판 모르는 삶들을 보며 내 삶도 소중하게 여긴다. 남은 시간들을 천천히 지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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