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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pr 03. 2024

우리는 모두 팔림프세스트

<도시의 만화경萬華鏡>

손세관 지음,  도서출판 집, 608쪽, 2023년.


주춤한다. 책이 애매하게 크다. 흔히 보는 A5국판은 148 ×210이다. 174 ×225는 신국판도 아니고 크라운판도 아니고 고민한 크기이다. 크기도 부담스러운데 두께는 608쪽이다. 사진이 많아서 고급종이를 썼나, 책값이 32,000원이다. 1126g, 무겁다.


표지가 빽빽하다. 벽에 거는 그림지도를 174 ×225으로 축소한 사진이니 눈이 아프다. 제목도 불편하다. '도시그림'이란 부제를 붙여놓고 만화경이라니! <도시를 보는 거울>보다 <만화경으로 본 도시>가  솔깃하지.

 

저자에게는 호감이 생긴다. 유홍준의 집을 지은 승효상, 원주 뮤지엄산의 안도 다다오와 <어디에서 살 것이냐>는 유현준 들의 건축학자에게 이미 박수한 터이다. 아들에게 받은 이 책을 구경삼아 편다. 건축학자가 세계 15개 도시를 두 번 세 번 밟으며 쓴 책이다. 여행가이드가 아닌 건축학자의 을 따라간다. 할멈이 그림지도에 빠진다.


겁劫은 인간세계 4억 3천2백만 년의 시간이란다. 지구 역사 45억 년은 우주 역사에 비하면 점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때 그려진 그림지도들을 보며 공간을 넘어 시간을 여행한다. 지구는 우주 속의  먼지 한 톨인데  먼지 속의 작은 인간은 한 우주이다.


사람이 많다. 그림지도를 그린 사람과 산 사람, 그림지도 속의 사람, 그림지도를 보여 주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람은 점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 여행 중인 사람,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 사람은 티끌이다. 오밸리스크를 만든 이집트 사람도, 빼앗아 온 로마 황제도, 약탈해 온 물건을 구경하고 환호하는 중생도.


역사는 팔림프세스트이다. 귀한 양피지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듯 작은 지구에 사람이 살고 죽기를 반복한다. '나'라는 우주에 새기고 잊기를 반복한다. 만화경으로 꼼꼼하게 살펴보니  인간은 모두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이다.


사람들은 벚꽃을 본다, 자두꽃도 활짝 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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