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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May 06. 2024

늦바람 난 할멈

주방이 부옇다. 전기레인지는 벌겋고 공기 청정기는 분노한다. 탄 냄새도 번진다. 레인지 불부터 잠그고 창문마다 훌러덩 열어젖힌다. 오랜만에 냄비를 태워 먹는다.


요즈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 바쁘지도 않은데 서두는 습관에서 거의 벗어난 듯하다. 실수 없이 해왔는데 오늘은 재미 좀 보다가 불 낼뻔한다. 냄비를 태운 정도라서 다행이다.


해금 소리가 들쭉날쭉한다. 활대로 줄을 마찰하는 각도가 나쁘고 왼손으로 잡는 공명통이 자꾸 움직인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니 손가락이 아프고 소리가 곱지 않다. 가끔 만족스러운 소리가 나니 더 켜게 된다.


최근에 연습을 시작한 곡이 '사명'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만큼 아름답다. 찬송가 가사와 관계없이 곡이 아름다우니 자꾸 연습한다. 초보자가 해금 선율에 취한다. 국이 졸여서 냄비가 타는 줄도 모르고 심취한다. 할멈의 서툰 늦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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