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명옥 Jul 17. 2024

빈집이 되어야 내가 인간이 되므로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창비 출판 2024년 192쪽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창비시선 500번째 시집이다. 시선 401번부터 499번까지 8년간 출판한 시인별로 한 편씩 골라 총 90편을 담은 기념시집이다. 401번째 시인 김용택은 1948년생, 499번째 시인 한재범은 2000년생이니 다채로운 세계를 차린 셈이다.


시인의 세계, 시인의 상상은 대체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문법과 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시들도 많다. 한 낱말이나 구절을 얻고 자족하거나 장면이나 소재를 되뇌며 기억한다. 이해되고 감동되는 시를 만나면 기쁘다.


리산 <울창하고 아름다운>은 '모퉁이'란 낱말이 정겹고, 전동균 <이토록 적막한>은  '~우리는 걸어간다 / 옆구리에 지느러미가 돋아나도 / 비늘들이 발등을 덮어도 // 우는 대신 웃는 표정으로'라는 구절이 따뜻하다. 안도현 <호미>는 호미의 은유가 섬세하고, 정호승 <집을 떠나며>는 '집'의 이미지와 시인의 관조가 느껴진다.


손톱이 빠졌다. 문에 찍히고 빠지는데 꼭 백일 걸렸다. 마지막 한 달은 아주 불편했다. 윗부분은 떨어지고 아래쪽 끝이 달라붙어 반창고로 덮어야 했다. 반창고를 떼고 붙일 때마다 짜증났다. 새로 난 손톱은 짧고 울퉁불퉁하다.


'모퉁이 저쪽에 무정한 비밀들이 있다', '옆구리에 지느러미가 돋아나도 웃는 표정으로 걸어간다', '호미처럼 허리 구부리고 밥을 먹는 여인들이 있었다'는 싯귀를 읽으며 짜증을 달랜다. '빈집이 되기 위하여 집을 떠난다/집을 떠나야 내가 빈집이 되고 /빈집이 되어야 내가 인간이 되므로~' 정호승에게 공감하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할멈, 다 잘할 수 없고 다 알 수도 없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를 만져주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