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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운명이 그리는 인생이란 그림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2021년 난다 출판 192쪽


프레쉬맨이었다. 수업 중에 교양학부 건물 주변을 돌며 구호를 외치는 무리를 처음 보았다. 낯선 풍경에 신입생들은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건물 현관의 한쪽 벽을 차지한 대선배 박**의 부조상이 달걀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고 지리과 동기가 여학생부장이 되었다. 우리 과 여학생들은 아무도 호국단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생과 자취하며 학점 따느라 고달팠다. 나는 코 앞의 내 문제로 헉헉거리며 민주화운동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성적순으로 공립중고등학교에 발령 내는 제도에서 나는 오지로 갈 성적이었다. 공립학교를 포기하고 시내 사립학교에 발령받았다. 함께 발령받은 심 선생은 학도호국단 간부를 지낸 그 동기였다. 학생들을 잘 리드하던 심 선생은 4년 만에 퇴직하고 나는 안티재단파로 남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는다. 1970 ~ 80년대, 나는 내 문제만 바라보고 그녀는 시대적, 사회적 문제를 본다. 나는 교사로서 안정되게 직장 생활하고 그녀는 이 일 저 일을 한다. 나는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고 그녀는 미혼으로  정신분열증을 얻는다. 맏이의 짐을 진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그녀에게는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

자칭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들은 어둡고 절망적이다. 현재 건강을 잃고 가족이 없는 시인이 안쓰럽다. 잠시 미안해지지만 거듭 생각하니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내 그림을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각자 한 편의 인생을 그린다. 무더위 중에 황금비나무가 꽃을 피운다.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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