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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자두꽃이 피었다


4월에 들자 자두꽃이 피었다. 기다리던 자두꽃이 연두로 피었다. 연둣빛 자두꽃은 열흘 남짓 봄 풍경이 된다. 경주 숲머리 카페 飛天에서 자두꽃을 본다.

숲머리 음식점길과 명활산성 사이에 뚝방길이 있다. 보문교 앞 명활산성 입구에서 진평왕릉으로 가는 길인데 '선덕여왕길'이라 부른다. 냇물을 낀 1.6km는 평탄해서 걷기 좋은데 황리단길처럼 북적대지 않으며 벚꽃이 피기 전 평일은 더 한적하다. 한적한 뚝방길을 혼자 걷는다. 내가 누리는 소확행이다.

소확행을 누릴 때 가끔씩 올라오는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 교사 2년차 새내기 때 일이다. 낯선 업무들은 벅차고 7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까지 감당하는 담임업무는 두려웠다. 내 반 ㅈ은 결석이 잦고 지각이 많았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언행이 굼뜨고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문제아라 점찍고 찾아간 어린 선생에게 할머니께서 허리를 숙이셨다. 할머니는 손자 ㅈ과 단둘이 학교에서 먼 동네에 살았다.

여러 가지로 신경쓰였는데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계속 생겼다. 주로 운동장에서 체육수업하는 날 현금, 물건 등이 없어졌다. 학급 아이들은 ㅈ이 운동장에 늦게 나와 혼나고 수업 중에 화장실도 갔다고 의심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다. 다른 교실에서도 분실사고가 계속 일어나서 학교 문제로 커졌다. 덩치는 커서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선생님께 대든다는 말도 나왔다. 2년차 새내기에게는 골치아픈 남자 중학생이었다.

ㅈ은 1학기 말에 제적당했다.나는 담임으로서 결사저지하지 못했다. 실은 ㅈ을 보호하고 기다려 줄 힘도 없었다. 학급 성적이 나쁘고 출석률 낮으면 담임이 교장실에 불려가던 1980년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다.

자두꽃이 피기를 기다려 소확행을 누리는데 ㅈ이 생각난다. 50살이 넘었겠네. 나를 원망하였겠지. 더 어긋났을까? 두렵지만 찾아볼까? 찾을 수 있을까? ㅈ에게 미안하고 나에게 부끄럽다. 문득문득 미안하다. 자두꽃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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