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말하자면 논문집이다. 역사학과 사회학의 학문적 융합이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1970년대에 활동했던 우리나라 사학자들의 논문을 한 데 엮어 발행한 책이다. 프랑스의 아날학파(Annales, 이념이나 사건보다 장기적인 경제사회적 변화에 초점을 둔 역사 연구를 추구한 학파)와 독일의 사회사(社會史) 운동의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저자 모두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적 방법의 역사 연구에 긍정적 입장을 보인다.
다만 길현모와 이종수 등의 학자는 당시 새롭게 대두됐던 사회학적 연구 방법을 맹신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길현모의 경우 신사학(新史學)이라 소개된 사회과학적 역사가 아직 이론적 기반을 견고케 할 만큼의 연구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역설한다. 사회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그 용어의 넓은 의미만큼이나 다양한, 계량적, 공시 관찰적, 가설 검증적 방법 등을 내포한다. 그런데 길현모에 따르면 이 다양한 방법들을 오용할 때 자칫 연구자의 주관을 강화하여 사실로부터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종수의 경우, 역사가 '어느 한 사건에 대한 특수성을 기술'하는 것인 반면 사회학은 '여러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법칙을 개념화'하는 데 목표가 있음을 설명한다. 이에 그는 역사가 사회학의 방법을 차용할 수는 있지만 사회학化해서는 안된다고도 강조한다.
역사 학술지 <사회경제사 연보>, 마르크 블로흐와 루시앙 페브르가 공동 창간하여 아날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역사 연구가 태동하던 시기는 유럽에서 정치사(政治史)로서의 역사 연구가 한계를 보이던 시점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사회는 급격한 산업 발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자신을 움직이는 동인을 기득권층의 정치에서만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와 함께 영웅주의적 인물 중심의 역사 서술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어 갔다. 난항을 겪던 기존의 역사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을 들고 도전한 이들은 프랑스의 마르크 블로흐, 루시앙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 독일의 오토 브루너, 베르너 콘체, 라인하르트 코젤렉 등이다.
( 좌)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역사 '구조사'를 창안한 페르낭 브로델(1902~1985), (우) 산업화 이후 역사를 사회학적 요인으로 설명한 베르너 콘체 (1910~1986)
이들 중에서도 블로흐와 페브르를 이은 아날(Annales) 학파 2세대인 브로델은 역사를 사건사, 사회사, 구조사의 세 개 계층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심층적 역사인, 구조사라는 '장기(長期) 지속의 역사'를 주목하도록 했다. 독일의 콘체는 경제시스템, 소득분배 인구변화 등이 산업화 이후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주장하여 사회사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아쉬운 점은 주제가 광범위하고, 공동 집필이 아닌 개개인이 집필한 논문을 모은 책이다 보니 논문 간 중복되는 내용이 많으며, 저자 간의 문체도 천차만별이기에 전체적인 가독성이 낮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학으로서의 사회사를 소개하는 데에는 이 책이 더할 나위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