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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Jul 17. 2020

물 위에서 시간을 노래함-4

슈베르트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을 듣고 남기는 긴--감상

17년 10월 탈고


(3장에서 계속)

물결과 노을 풍경을 보며 주유(舟遊)를 이어가던 시적 자아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르러 결국 자신에게 눈을 돌린다. 질료로서의 빛, 조각배와 결합하여 약동하거나, 백조, 영혼과 결합하여 전진하는 물의 움직임에서 시인은 시간의 특성을 발견한다. 이와 함께 그는 물 위에서 물에 기탁하여 노래한 시간의 양면성이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 질료들과 결합한 물의 움직임 속에서는 자신 또한 물과 결합하여 물의 움직임에 대한 질료로 동화하기 때문이다.


4. 물에게서 나에게로


시인은 먼저 물과 여러 질료와의 결합으로 약동과 전진을 인식한다. 이때 그는 뱃전에 앉은 자신 또한 물 위에서 빛을 받아 수면에서 ‘반짝이고 흔들리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각각의 운동성을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는 물 위로 내려앉는 노을과 함께 희미해지는 약동을 본다. 또 수면의 움직임으로부터 노을빛의 강렬함으로 거의 정지된 풍경을 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운동성의 소멸이 자신에게도 다가옴을 느낀다. 이처럼 움직임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양가적 상황을 모두 이성적으로 간파하는 존재만이, 시간이 그 자신에게 투영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ü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아, 이슬 젖은 날개를 달고 사라져 간다

시간이 흔들리는 파도 위의 나에게서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내일도 반짝이는 날개를 달고 사라져 간다,

시간이 어제와 오늘처럼 또다시      


이슬 젖은 날개와 반짝이는 날개는 같은 대상에 대한 두 이름이다. 여기서의 물은 이슬로서 날개 위에서 빛과 결합하여 약동하고 있으며, 날개는 본시 어디론가 전진하려는 이미지를 암시하고 있다. 날개라는 체언과 이를 수식하는 ‘반짝이다’라는 용언의 결합은 전진과 약동으로 나타나는, 바로 죽음의 이편에 서 있는 삶의 모습이다.

해 질 녘 주유를 하던 화자가 사라지는 시간을 직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시간이 하루 속에 함축되어 있음을 본다.

시인 슈톨베르크와 작곡가 슈베르트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가교 역할을 하며, 계몽주의보다 자연과 인간본성의 통찰을, 형식미보다 풍부한 묘사와 직관을 추구했다.

비록 절대적인 시간은 지속되지만 그 속에서 호흡을 가진 피조물들은 유한한 생을 살기에 인생 안에서의 시간과 조우하고 작별할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동안의 변화가 인생을 암시하는 알레고리가 된 이유가 그것이다. 하루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시간을 우리는 날마다 추체험한다. 위의 두 행은 스스로를 포함해 유한한 생을 사는 존재들에 대해 시인이 수용적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죽음에 대한 슈톨베르크의 수용적 태도는 다른 짧은 시에서 더 확연히 나타난다.     


O sähn wir ihr in's Angesicht

Wir scheuten ihren Busen nicht!

아, 우리가 그녀(Muttererd-대지모)의 얼굴을 바로 대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리라

(F. 슈톨베르크의 시 <Des Lebens Tag ist schwer und schwül> 중에서)     


시인은 물에게서만이 아닌, 물에 비친 시간을 보는 자신에게서도 시간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변전하는 세상에서 자신 또한 언젠가 소멸되리라는 것을 또한 예감한다. 시인은 이 예감을 3연의 마지막 행을 통해 담담한 문체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Bis ich auf höherem strahlendem Flü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내가 더 높이, 빛나는 날개 위로 날아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는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기꺼이 인정하므로 자신의 소멸 앞에 담담할 수 있다. 소멸을 두려워하는 이에겐 죽음이 삶의 영역에 조급함과 불안의 그림자를 던진다. 삶의 면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림자가 커짐에 따라 환희의 영역은 서서히 지워지기 마련이다. 반면 시적 자아의 태도는 소멸 앞에서 어떤 정념도 드러내지 않는 스토아적 경지에 이른다. 무정념의 상태는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펼쳐진 삶을 살아낸 결과이며, 그는 끝내 그림자를 딛고 ‘빛나는 날개 위로’ 비상할 수 있는 긍지를 갖게 된다.


결국 시인은 <Auf…>의 주요 소재인 물을 통해 인간 삶의 특성에서 죽음까지를 모두 다음과 같이 함축한다; 시간은 먼저 물에 투영된다. 물은 자연물을 포함한 여러 질료와 함께 삶의 특성들과 죽음 이미지를 나타낸다. 인간은 자연물로서 삶과 죽음의 질료가 되면서도, 이성을 통해 질료로서의 자신을 간파하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슈톨베르크에게 물은 더 이상 현실과 괴리된 신비한 물의 요정(Undine) 같은 것이 아니다. 또는 단순히 감정을 기탁하여 자신과 동일시할 대상도 아니다. 자연과 대척점에 선 인간이 아닌 오히려 이성을 통해 자연에 소속된 유한한 인간을 발견한 그에게, 물은 인생의 또 다른 형상이 되는 것이다. (끝)


(노래로 들으시려면 Ian Bostridge의 목소리를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6svuviVj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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