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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Jul 16. 2020

물 위에서 시간을 노래함-3

슈베르트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을 듣고 남기는 긴--감상

17년 10월 탈고


(2장에서 계속)

하지만 전진하는 삶은 결코 삶의 저편에 이상향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데, <Lied auf…>에서 영혼이 가고자 하는 저편(dahin)도 현재를 등진 이상향이 아니다. 저편은 방향성의 또 다른 말이다. 비록 의식 속에는 목표점이 있을지 모르나 조각배는 자신의 힘으로 물길을 움직일 수 없다. 단지 자신을 받치는 물결이 주는 나아감을 힘입어 ‘저편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저편을 향해 가는 것’이다. 저편을 향해 미끄러지는 운동성은 삶의 조각배 편들, 이들의 소유물인 백조와 영혼이 유유히 그리는 선에 의해 아름답게 변모한다.


3. 물에게서 노을에게, 죽음-이미지


흘러가는 물은 약동과 전진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의 두 가지 특성을 환기하지만, 동시에 죽음 이미지도 불러들이는 야누스의 얼굴을 띤다. 깊이 생각해볼 때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죽음은 의식 밖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지상의 삶을 부여받은 물질들은 살아있음을 의식하는 시간 동안 가득 찬 삶을 얻었지만 삶이 그 의식의 바깥까지 채워주지는 않기에, 죽음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의식 속에 머문다. 죽음 이미지는 대개 시에서 대기적(大氣的) 질료로 나타난다.

로마 신화에서 1월을 관장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 시작과 끝 또는 모순을 의미한다. (Pinterest)


대기적 질료는 죽음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암시에 가깝다. 죽음을 나타내는 대기적 질료로는 밤과 노을을 들 수 있는데, 밤이 삶의 종착점이나 삶의 흔적을 모두 지운 무(無)에 관한 상상력이라면 노을은 죽음에 근접하며 지워져 가는 삶의 마지막 숨결에 대한 상상력이다. 가령 밤의 질료로는 K. 라이트너가 표현한 푸른 하늘(das Blaue)을 들 수 있다.  

    

Und weisen von Gräben…Uns hinter das Blaue mit Fingern von Gold

그리고… 무덤들로부터 금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우리에게 푸른 하늘 너머를 가리켜 준다

(K. 라이트너의 시 <Die Sterne> 중에서)     


반짝이는 별의 다른 이름인 금반지 낀 손가락은 죽음이 이 세계와의 유대를 끊는, 푸른 밤을 향한 새로운 여행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노을의 질료로는 <Lied auf…>의 2연에서, 하늘로부터 물가 숲에 내려와 비치는 붉은빛을 예로 들 수 있다. 한낮의 투명한 빛과 달리 저녁의 빛은 빨갛게 내려온다. 그리고 넓게 퍼진다. 이때 노을빛에 확장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물이다. 이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우리는 죽음의 상태로 나아가는 물을 다시 관찰해 보아야 한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해넘이에 달려가는 물의 운동은 고단하다. 물을 바라보던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결국 바다에 도달하려는 물이 점점 저편으로 가면서 움직임 이미지들이 힘을 잃어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빛의 약동도 조각배의 전진도, 물의 질감을 잃으며 편평해져 가는 수면에서 자취를 감춰 간다. 그러다 하늘과 맞닿는 곳에서 물은 기어이 바다에 닿기도 전에 자신을 붉은 노을빛에 내어준다. 여기서 힘을 얻은 노을은 물을 거스르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이와 반대로 물은 운동을 지속할 힘을 서서히 잃게 된다.

이러한 힘의 전이에 대한 예감은 2연의 첫 행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Ü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ötliche Schein.

서쪽 작은 숲 나무 우듬지 위에서

다정스레 눈짓한다, 붉은 광채가 우리에게로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동쪽 작은 숲의 잔가지들 아래로

창포가 잘강인다, 붉은빛 안에서


나무 우듬지 위나 잔가지들 아래의 창포에까지도 손을 뻗치는 노을을 보자. 물을 잠재우는 노을은 우리의 눈길에도 영향을 끼친다. 삶의 마지막 숨결인 까닭에 노을은 느릿하면서도 강렬하다. 죽음의 문 앞을 지키는 노을은 삶이 죽음에 들기 전 그 특유의 점성(黏性)으로 우리의 눈길을 나무 우듬지와 흔들리는 창포에 붙들어 놓는다. 노을이 만들어내는 조형물은 물의 약동과 같이 순간적으로 지나가지 않고 오히려 그의 애무를 받아 순간을 지속시킨다. 느릿한 시선의 우리 또한 물과 결합하여 노을의 마지막 숨결을 느끼게 된다.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영혼은 홍조 띤 광채 속에

하늘의 기쁨과 숲의 안식을 들이마신다    


물결과 노을 풍경을 보며 주유(舟遊)를 이어가던 시적 자아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르러 결국 자신에게 눈을 돌린다. 질료로서의 빛, 조각배와 결합하여 약동하거나, 백조, 영혼과 결합하여 전진하는 물의 움직임에서 시인은 시간의 특성을 발견한다. 이와 함께 그는 물 위에서 물에 기탁하여 노래한 시간의 양면성이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 질료들과 결합한 물의 움직임 속에서는 자신 또한 물과 결합하여 물의 움직임에 대한 질료로 동화하기 때문이다.

(4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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