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초록빛

문장의 마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by 섬세한 다육이






어둠과 빛이 맞닿는, 해뜨기 전의 새벽.

책방 안은 서늘했지만,

엄마의 품에서 남은 온기는 조용히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


루크는 천장 기둥 위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고,

나는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세웠다.

부서진 책장, 타버린 흔적, 남겨진 잿더미들.

모두 어제와 같았지만, 공기 속 어딘가에 은은히 빛나는 것이 있었다.


숨을 쉬듯,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초록빛.


나는 그 빛에 기대어

부서진 책 한 권, 또 한 권을 조심스럽게 주워 책장에 꽂았다.

이번엔 마법의 손짓도, 반짝이는 문장도 없었다.

내 손으로, 한 장씩, 천천히.


그러다 문득, 타버린 책들 사이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표지는 그을려 있었지만, 내용은 놀랍도록 온전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책을 펼쳤다.

그 안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이 다시 쓰는 문장이, 마법을 되살릴 것입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다짐을 했다.


“다시 써보자. 진심을 담아서, 처음처럼.”


그 말을 뱉는 순간,

공기 속 초록빛이 작게 파동을 그렸다.

책장 틈에서 먼지가 일었고, 책 한 권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갔다.


루크가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책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 순간, 마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엉망이던 책장이 더 단단해져 제자리를 되찾았고,

재가 되었던 책들은 마치 첫날처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시 잡은 너를 위한 선물이야.”


루크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았다.

책방 전체가, 아무 말 없이도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소리 하나가 책방을 채웠다.


딩 ㅡ 다시, 시작이었다.


“어서 오세요.”

익숙했지만, 오늘만큼은 유난히 가슴 뛰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