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의 마음

막내, 손주들, 사춘기, 국밥

by 민들레




지난주, 토요일 막내가 두 손주와 왔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 준이는 100kg이 넘었다고 한다. 키가 커서 다행이지만, 운동을 좀 더 했으면 하는 할머니 마음이 욕심일까? 검도를 하고 있다는 아이, 다른 운동 더 해도 좋으련만. 생각이 없는 눈치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샤워하고 천진하게 나오는 녀석을 보면 사춘기도 오지 않은 모양이다. 말로 다 표현하려는 아이라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덩치와 상관없이 귀엽기만 하다.

반면 초등학교 5학년인 동생 윤은 영 딴판이다. 차분하고 속이 깊어 도통 제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형은 용돈을 밝히는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다. 그런 윤이한테 마음이 더 간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끼고 사는 아이들, 전자기가가 눈에 해로울 텐데 한시도 놓지 않으려 한다. AI를 더 잘하여 손주들에게 물어보며 배운다. AI는 어디까지 인간을 끌고 갈까. AI가 모든 일을 다 해버리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남을까. 인간이 만들어 낸 AI가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이 군인이라 따로 떨어져 지내며, 홀로 직장 생활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내는 막내가 늘 안쓰럽다. 그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는 작가라니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아침은 대충 때우고 점심은 학교에서, 저녁은 사 먹기 일쑤라는 말에 반찬이라도 싸주려 하면 김치랑 장류만 있으면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번에도 결국 파김치와 마른 김만 겨우 들려 보냈다. 더 챙겨주고 싶어도 거리가 멀어 마음뿐이다. 보내줘도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고 거부한다.

자식은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부모 눈에는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 같다.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고, 어디 아픈 데는 없나 살피게 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잘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야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그 옛날, 뜨거운 불 앞에서 자식 몸에 좋다는 약을 정성껏 달이시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몸이 약한 딸을 향한 그 마음이 얼마나 깊었을지 부모님 하늘 가신 뒤에야 그 마음을 느껴본다. 나는 늘 부모님의 걱정만 시키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토요일 저녁, 남편이 친구와 예전에 맛있게 먹었다던 시외 국밥집으로 온 가족이 향했다. 국밥을 좋아하는 둘째 손주를 생각한 할아버지의 배려였다. 소문난 맛집답게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붐볐다. 다섯 식구가 곱창전골 '대'자를 시키고 기대를 품으며 한 숟갈을 떴다.

그런데 아뿔싸, 내 입에는 너무 느끼했다. 평소 담백한 음식을 즐기는 터라 도저히 수저가 가지 않았다. 결국, 채소만 몇 점 건져 먹으며 저녁을 때워야 했다. 준이는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 비우고 공기 하나를 더 비웠다. 윤이도 제법 먹었지만, 내게 사주고 싶어 기대를 품었던 남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잘 먹지 못하니 남편도 입맛을 잃은 듯했다. 정성이 고마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입에서 거부하는 음식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오는 길에 혼자 사는 남편의 친구에게 전해 주었다. 다음 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두 끼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는 전화를 받으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누군가에게는 귀한 별미가 되는 것,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그날 저녁 국밥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으로 남았을지 몰라도, 자식과 손주들을 살피는 마음, 그리고 아내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 했던 남편의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 뜨끈하고 진한 국물 같았던 하루였다.


국밥 한 그릇의 마음


훌쩍 커버린 중학생 손주의 덩치와

속 깊은 초등학생 둘째의 눈빛 속에

봄날처럼 북적이는 토요일 오후

먼 길을 달려온 막내딸


어른이 되어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글 쓰는 막내딸의 고단한 어깨 위로

파김치 한 통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뜨거운 불가에서 자식을 위해 약을 달이던

그 옛날 우리 어머니의 야윈 등 뒤로

이제야 당신의 근심 어린 마음이 훤히 보였다


남편의 마음이 담긴 어느 시골 국밥집

소문난 곱창전골은 김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깊었고

입에 맞지 않아 도통 삼킬 수 없던 맛

미안해하는 남편의 실망한 눈치에

차마 다 먹지 못해 빈 접시 위에 채소만 담았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내게는 느끼했던 그 전골이

누군가에겐 든든한 두 끼 보약이 되었으니

세상사 맛이란 게 사람의 입맛 따라

다른 맛을 느끼는 건가


음식 맛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를 챙기고, 자식을 살피는 그 마음은

오늘도 진한 국밥 한 그릇처럼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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