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

시골집 신우대 참새 제비

by 민들레

텃새


내게는 바다 가까이 작은 한옥이 한 채 있다. 집을 오래 비워둘 수 없어서 수 년째 오가며 돌봤다. 사람의 기척이 뜸하면 집은 돌아서서 폐허가 되기 십상이다. 텃밭이며 마당에 잡풀이며 손이 가야 할 곳이 수두룩하다. 나의 현주소가 도시에 있다고 해서 마음도 거기에 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들러 텃밭을 가꾸며 수확에 즐거움도 농작물을 키우는 것에도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농사 경험이 있어도 농사짓는 방법이 예전과 달라져 쉽지 않다. 그래도 푸성귀 몇 가지의 농작물을 수확하는 재미로, 씨앗을 심고 잡초를 매어주고 작은 텃밭을 가꿔왔다. 제초제를 치지 않아 풀 속에 살아남은 먹거리들은 그저 반갑고 살갑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사방이 어질러지고 어수선하다. 집을 비웠던 시간 속으로 신우대들이 집 뒤란까지 파고들었다. 더군다나 신우대는 키도 컸지만, 손가락도 신우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빽빽하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면 순식간에 뿌리를 뻗어 집을 점령할 것 같았다. 대나무를 철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도 족히 몇 년이 걸렸다.

마을 젊은이에게 부탁해 날마다 조금씩 신우대를 톱으로 베어내고, 굴착기를 불러서 대나무 뿌리를 철거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대나무 숲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참새가 살고 있었다. 대나무가 넘어질 때마다 하늘을 새까맣게 날아오르는 것은 참새떼였다. 참새들은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되어버린 셈이다. 정처 없이 어디론가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났거니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했던 참새들이 사람이 살지 않은 기와집 처마 밑에 구멍을 뚫어 둥지를 틀었다. 빨랫줄에도 쪼르르 매달려서 귀가 아프도록 재잘거렸다. 마치 이제부턴 ‘여기가 우리 집이야.’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참새들이 진을 치자, 해마다 찾아오던 제비가 오지 않았다. 처마 밑에 있는 다섯 개의 제비집이 주인을 잃었다. 참새들의 등쌀에 제비들은 이제 우리 집을 떠나버린 것일까. 나는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처마 밑에 옹기종기 집을 지어 제비들이 드나드는 광경을 보는 것도 시골집에 사는 소소한 재미였다. 그들은 떠나버리고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주인이 없는 제비집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집을 비워서 우리 집이 망가지듯이 제비들의 집도 매한가지였다. 희한하게도 참새들은 제비집에 둥지를 틀지 않았다. 제비집에 알을 낳아도 좋으련만, 지붕 속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았다.

20220603_제비.jpg 집에 날아든 제비

참새들의 집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우리 부부였다. 내 집으로 파고드는 대나무를 없앨 생각에 앞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참새들의 둥지들을 순식간에 부수어버린 장본인이었다. 역지사지하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고요한 대나무숲을 하루아침에 밀어버렸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으리라. 뒷산에 대나무가 많아도 참새들은 그쪽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우리 집으로 몰려들어 지붕 속에 둥지를 틀었다.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한 사람처럼.


참새는 농산물을 쪼아 먹어 농작물을 해쳤다. 그런데 참새는 정말 무조건 나쁘기만 할까. 중국의 마오쩌둥이 참새들이 곡식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참새 소탕 작전을 펼쳤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참새 떼들이 없어지자 기근이 들어 1950년대 후반, 3년 사이 4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알곡들을 쪼아 먹은 참새도, 벼의 해충을 잡아먹어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는 겨울, 참새는 꽁꽁 얼어붙은 시금치도 쪼아 먹었다. 어린 날 올려다본 감나무의 끝에 매달린 홍시가 클로즈업된다. 어느 주인이 겨울새를 위한 주홍빛 꽃 한 송이는 얼마나 가슴을 따스하게 해 주었던가. 새들은 이른 봄에는 곰보배추도 모조리 해치웠다. 새들의 겨울나기도 마치 허기진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들판에 세워 둔 늙은 허수아비를 바라본다. 낱알을 쪼아 먹지 못하도록 새들은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을 터. 우연히 봤던 어떤 스님의 일상이 스쳐 간다. 스님과 새들의 공생, 새들을 부르면 일제히 날아들어 어깨며 머리 위까지 점령했던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스님의 입술에 물고 있는 해바라기 씨앗을 감쪽같이 날아와 쪼아 먹었을 때 스님의 그 행복한 눈웃음…. 자연과 더불어 수양을 겸하는 표본처럼 무수한 새들을 돌봐주는 모습. 나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마당에 세워볼까, 했던 생각을 접었다. 창고에 남겨 둔 쌀싸라기를 한 줌 들고 텃밭 빈터에 여기저기 뿌렸다.

아침이면 참새들이 먼저 일어나 재잘거리며 먹으리라. 여명과 함께 먼저 찾아드는 것은 새들이었다. 귀가 따갑도록 지저귀는 소리가 이젠 귀에 익숙해졌다. 아침을 깨우는 기상 소리처럼 받아들인다. 새들은 어쩜 저렇게도 한결같이 부지런할까. 아침잠이 많은 내가 무색할 정도로 요란하게 떠들어준다.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가 창공으로 날아오를 때 나에게 알 수 없는 묘한 힘이 몸에 실려 왔다.

결국, 비어있는 집은 참새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참새 떼들이 처마 밑에 흙을 완전히 파내려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미장이를 불러 처마 밑에 흙을 채울 때, 참새들이 요란하게 날며 울부짖었다. ‘이 안에 새끼들이 있어요’하고 말하는 것처럼. 부산하게 드나들었다. 처마 밑에는 알에서 막 깨어 나온 새끼들이 아직 힘이 생기지 못한 다리를 떨고 있으리라. 그런 새끼가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어미 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망연자실, 어쩔 수 없이 새끼가 있는 쪽에는 작업을 중단했다. 기다렸다가 새끼 새들이 둥지를 떠난 후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얼마 후, 다행히도 새들이 별 탈 없이 훨훨 날아갔다. 그다음, 서둘러 석회로 미장을 마무리했다. 집이 새집처럼 깨끗해졌다. 그런데 참새들은 또 어디에 보금자리를 지을까.

지금 뒷산 대나무 숲에 짹짹 참새 소리가 요란하다. 참새들은 아마도 그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나 보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둥지를 잃었던 참새들, 이제 다시 너희들의 숲에서 지지배배 거리며 평온하게 살아가길.

참새도, 세상의 모든 새도 그리고 살아있는 소중한 생명이여. 그들 모두가 인간과 더불어 공생하며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물며 이름도 없는 풀과 나무까지도 모두가 한데 어울려 자연에서 공생하길 바라는 마음.


시골에는 비어있는 집들이 더러 있다. 그렇지만 선뜻 처분하지 못하고 뭉그적거린다. 한때 어린 자식들과 이마를 맞대고 살았던 집. 대대손손 내려오며, 조상들의 삶에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집. 아이들의 태자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듯이 그 속에는 새들의 지저귐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오랫동안 내 가족들이 살았던 옛집을 껴안고 있다. 철새처럼 낯선 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왔던 시간을 반추해 본다. 철새들이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듯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돌아가리라. 텃새와 철새의 경계선을 허물고 자유롭게 내 마음의 날개가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가리라.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고향 집을 오가며 귀촌의 꿈을 꾼다. 참새들이 다시 대숲으로 돌아가듯.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옛집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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