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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쓰기 3일 차] 그리운 치앙마이

엑스트라로 사는 기분

by 산하 Sanha


사실부터 말하자면 치앙마이 한달살이는 엄청나게 즐겁진 않았다.

왜 그런데도 치앙마이가 그리운 걸까?



처음 태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고

방콕 어딘가의 골목 냄새를 맡았을 땐 좀 충격적이었다.

'뭐지 이 냄새...?'

어떻다고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숨 쉴 때마다 괴로운 향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난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거리의 향신료와 과일향 그 나라 삶의 여러 냄새가 섞인 향에

첫날엔 꽤나 힘들었다.


게다가 음식까지 입에 안 맞았는데

특유의 젓갈 향과 눅눅함이 내 입맛에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중간엔 과자 잘못 먹고 밤새 토하고 응급실에 갔고

그 뒤로 3일간 누룽지만 먹으면서 요양했다.

그것뿐이게?

방콕에서는 너무 더워서 에어컨과 더위를 반복하다

제대로 감기에 걸려 콧물을 줄줄 흘리며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해외여행은 이제 충분한 듯;;

평생에 태국 올 거 이번에 다 왔다.


라고 했는데 그 후 어느덧 1년.

치앙마이가 그립다.





적당히 더운 날씨에 양산을 쓰고 걷던 거리.

야시장을 지날 때면 항상 나던 향.

브런치 카페의 파라솔 아래서 멍 때리던 시간.


큰 이벤트들보다 사소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

그 나라를 추억하게 만든다.


아름다웠던 풍경이나 즐거운 경험이 아닌

거리의 느낌이나 향이 머릿속을 순간 스쳐 지나갈 때

정말 치앙마이가 그리워진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숙소 근처 강가인데

나름 메인 로드로 카페나 식당, 공원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강에는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다리 중간에 서서

강과 함께 도시를 함께 바라보면 내가 정말 여행 왔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강가 좌우로 쭉 뻗어진 높고 멋들어진 나무들과

바쁘게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알록달록한 툭툭이들.

밝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양산을 쓰고 있으면

걸을 땐 느낄 수 없었던 살랑 바람들이 머리카락을 쓸며 지나간다.

언뜻 들리는 태국어와 영어를 배경 삼아

정말 거울처럼 하늘과 나무를 비추는 강을 보고 있으면

난 이곳의 이방인이고 저들의 일상에 내가 톡 하고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좋았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이

흐르는 대로 다니며 치앙마이라는 영화에 엑스트라처럼 녹아드는 기분.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땐

내 밥벌이

내 집

내 인생.

항상 내가 나를 돌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았다면

치앙마이에서는 다른 이들의 삶에 둥둥 떠다니며

고민 한 점 없이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은 언제 가도 좋지만

내가 이끄는 것들이 너무 무거울 때

잠깐이라도 편안하고 싶을 때 가면 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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