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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쓰기 4일 차] 무뎌진다는 거

좋은 걸까 나쁜 걸까

by 산하 Sanha



1년에 한 번씩 여행 가던 고등학교 동창 4명 모임이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은 7년 만에 끝이 났다.

원인은 진부하지만 성격차이다.

2명이 미묘한 트러블이 있었고

결국 더 스트레스받던 쪽에서 관계 정리를 선택했다.



만약 고등학교 시절이라면 같은 공간에서 매일 마주 봐야 하기 때문에

해결하려고 애를 쓰며 노력했을 수도 있다.

나도 더 적극적으로 둘 사이를 중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 졸였겠지만

뭐랄까.. 이제는 관계에 내가 개입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같다.

내가 애를 쓰고 붙잡으면 잠깐은 4명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결국 비슷한 이유로 헤어질 것이다.




사람에게는 결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이 잘 맞는 사람만 주변에 남는다.

내가 저 사람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결이 안 맞아서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다.

한때는 나랑 너무 잘 맞고 평생 같이 놀 것 같지만 그건

그때, 그 상황에서 잘 맞았을 뿐 내가 성장하고 상황이 변하면

주변 사람은 바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상대를 나에게 맞춰 바꾸려고 해도

인간은 절대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바뀔 수 없고,

바꾸고 싶은 건 내 욕심이다.

그래서 친구들의 사이가 틀어져 더는 같이 여행을 갈 수 없어도

난 큰 감흥이 없다.

여기에는 학생시절만큼 친구가 내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도 있겠지만

내 노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갈수록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일이 줄어드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무뎌지는 게 아쉽기도 하다.

내가 자랐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생이 건조해지는 기분이랄까.

마치 청춘이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이제 다시 느끼기는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시간은 괴로움이라는 모래사장 속에서도 추억이라는 파편을 찾게 해 준다.

당시에는 힘들지만 돌이켜보니 추억이 있고 이제는 온전한 추억을 다시 볼 수 없는 것.

그게 이번에 느낀 무뎌짐 인 것 같다.

.

.


+갑자기 생각났는데 다시는 겪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운 거지

앞으로 평생 겪어야 한다면 그 감정이 좋을까?

어떻게 보면 망각을 무뎌짐이 쫓아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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